[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20년 넘게 청춘과 함께 때로는 가족의 원성까지 등 뒤로 하며 열과 성을 다해 이 자리를 위해 뛰었다. 바로 '임원'. 최근에는 '상무'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대기업의 꽃'이다. 사소하게는 '개인용 프린터'가 배치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이고 탐스럽게 보인다고 하는 자리다.
직장인들이 십 수년간의 치열한 직장내 무한경쟁에서 '승전보'를 울리고 차후 CEO까지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반석을 마련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연말 인사철이 다가왔다.
성공한 직장인들으로서 '상무' 소리를 듣기까지는 평균 21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뽑힌 임원인지를 판가름 받는 데는 불과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적어도 아랫사람들로부터는 말이다.
대기업의 K차장은 담당임원이 없는 회식자리에서 호칭이 바로 그 '가늠자'라고 말한다.
"담당상무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가지가 있어요. 상무, 상무님, 그리고 좀 심해지면 '그 XX'죠. '상무'는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지만 무난한 업무처리 스타일을 가진 임원인데 절반 이상인 것 같아요. 본인이 없는데 부하직원들이 '상무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단한 분이죠. 카리스마와 창의력, 업무추진력, 그리고 직원들의 단합까지 이끌어내고 성과는 직원들에게, 그리고 과오는 최대한 자신이 떠안으려고 해 오히려 직원들이 매사 꼼꼼히 일을 처리합니다. 상무XX요? 그렇게 부를 이유가 있죠.."
거론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문적 용어로 '귀인의 편향'을 지닌 임원이다. 무언가를 잘해내면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일이 틀어지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을 일컫는데 임원이 되면 이 같은 성향이 강해지는 모양이다.
다시 K차장 이야기.
"부장 때까지는 직원들과 화합하기 좋아했고 업무에서도 본인이 책임지려는 자세가 강했는데 임원이 된 후 달라지는 분들이 많아요. 사소한 것도 윗분들로부터 질책받거나 책임지는 걸 겁내하더라고요. 임원은 계약직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글쎄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 존 와그너 교수와 리처드 구딩 교수에 따르면 CEO들은 자기 회사의 경우 실적이 나쁘면 외부요인을 탓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반대로 다른 기업의 부진한 실적을 논할 때는 경영진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답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임원들도 이 실험결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영웅과 악당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영웅 상무로 주목받을 지, 악당 상무로 지탄받을 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정답은 더 높이 올라가려는 '꼼수'보다 초심을 지켜 최선을 다한 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게 아닐까.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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