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 “다 1조8000억원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모두 도끼눈을 하고 ELW시장을 봐요.”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을 담당하는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난 5년간 ELW로 인한 개인투자자 손실이 1조8000억원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시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험악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개인투자자가 1조8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면 다른 쪽의 누군가는 그 만큼 이익을 봤다는 것으로 이해되기 십상이고 더욱이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투자자별 손익’이라는 표현이 쓰여 이같은 오해를 부추겼다.
금감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의 손실액은 4000억원이 넘는데, 이들과 주로 거래했을 증권사(유동성공급자·LP)의 수익은 1000억여원에 불과해 차이가 크다. 5년간 LP들의 수익을 모두 더하면 약 2900억원 수준으로 개인투자자의 손실금액 1조8000억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듯 차이가 나는 것은 LP들의 헤지거래 때문이다. LP들이 ELW시장에서 ‘매도’ 형식으로 호가를 제시하면서 지수옵션 등 다른 시장에서 비슷한 유형의 기초자산을 ‘매수’해 손실위험을 줄이는 헤지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이같은 설명없이 손실액 자료를 제출해 시장에 대한 편견을 키웠다”며 “계좌를 일일이 분석한 것이 아니어서 손실액 계산이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식 발표한 내용이 아니라 참고자료로 제출한 것이어서 정확하게 검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증권사에서 제출한 금액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조8000억원 덕분에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용어는 ELW 시장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고, 결국 규제의 칼끝이 ELW 시장 자체로 겨눠졌다. ELW거래를 하려면 1500만원의 기본예탁금을 보유하도록 의무화 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계좌수는 10월 한달새 20% 이상 급감했다. 하지만 스캘퍼라 불리는 고빈도 매매자(1일 100회 이상 매매한 투자자)들의 거래가 는 탓에 거래대금이 다시 급증했고, 결국 당국은 거래 자체를 줄이려는 또 다른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부정확한 수치, 이로 인한 오해와 편견으로 애먼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
정재우 기자 jjw@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