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국가대표 에이스들의 맞대결이었다. 승패를 떠나 윤석민, 김광현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규시즌에서 투수 4관왕에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뽐낸 윤석민은 그야말로 최고의 피칭을 했다. 99번째 공이 시속 149km를 찍을 만큼 싱싱한 어깨를 과시했다. 커터와 슬라이더도 145km 안팎을 계속 유지했다. SK 타자들이 못 쳤다기보다 윤석민의 공이 너무 좋았다. 타자들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광현의 공은 평범했다. 가장 돋보인 건 마운드에서의 움직임. 두 번의 번트 수비를 무척 잘 막아냈다. 최희섭을 병살타로 잡아낸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위기를 탈출하며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분과 투구 수 조절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제구 난조에 시달리며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힘든 것 같았다.
사실 KIA는 좀 더 경기를 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윤석민이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쳐준 까닭이다.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간 건 두 번의 번트 실패 탓이 크다. 9회 터진 차일목의 만루 홈런이 없었다면 승부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차일목은 원래 왼손투수에게 강하다. 3회 김광현을 상대로 그는 안타를 때려냈다. 주목해야 할 장면은 9회다. 차일목은 빠른 공에 강점을 보인다. 엄정욱이 던진 공은 빠른 직구였다. 시속 152km의 직구로 앞서 유리한 카운트를 이끌어낸 그는 빠른 승부로 이닝을 매조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KIA 타선에서 차일목은 빠른 공에 가장 대처가 빼어난 타자다. 볼카운트가 불리했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유리했기에 무척 아쉬운 볼 배합이었다.
SK에게 아쉬운 장면은 하나 더 있다. 7회 무사 1루에서 이만수 감독대행은 최정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현재 SK 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건 사실상 최정 하나뿐이다. 0-1로 경기를 끌려가고 있었다는 점과 윤석민의 구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감독은 충분히 번트 사인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최정이라는 점에 있다. 이 대행은 그가 지휘봉을 잡으며 메이저리그 경험을 살리겠다고 공언한 것처럼 최정의 능력을 믿고 맡겼어야 했다.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옳았다. 하지만 이 대행은 스몰볼을 했다. 올 시즌 가장 타격감이 좋았던 최정에게 과감한 승부수가 아닌 번트를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타구는 병살타로 연결되며 팀 분위기의 저하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최정이 1차전 패배로 큰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는 조범현 감독이 윤석민에게 경기를 끝까지 맡긴 것과 비교된다. 팀의 에이스가 9회 홈런을 얻어맞고 실점을 내줬을 때 그는 벤치로 차일목을 불러들였다. 조 감독은 ‘윤석민의 공이 어떻느냐’고 연거푸 물었다. 선수에게 의사를 물어보며 상황을 파악한 것.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소통은 결과적으로 승리를 가져왔다. 스스로 판단해 기회를 놓친 이 대행의 지시와 대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슬램의 주인공 차일목은 9회 마지막 수비에서도 상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1사 1, 2루에서 그는 볼카운트가 2-3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안치용을 삼진을 처리한 뒤에도 그러했다. 바로 2루로 공을 던져 1루 주자 박재상을 아웃시켰다. 그의 센스 넘치는 플레이 덕에 윤석민은 편안하게 경기를 마감할 수 있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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