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지니스>는 2010년 한류 특집 기사에서 소녀시대를 제 2의 삼성이라 썼다. 후지TV의 오락 프로그램 <천사의 미용실>은 < STEP >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카라를 섭외하기 위해 한국 로케이션까지 감행했다. 2010년 일본에 데뷔해 첫해에만 각각 10억 엔, 13억 엔을 벌어들인 소녀시대와 카라는 일본 가요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두 그룹을 뒤이을 K-POP 아이돌들의 행보도 긍정적이다. 9월 21일 발매된 2NE1의 일본 데뷔 앨범 < NOLZA >는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티아라, 레인보우의 데뷔 싱글도 상위권에 진입했다. K-POP 스타들의 일본 내 성공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오히려 궁금해지는 건 ‘원조 한류 스타’들의 위치다. 2000년대 초 중년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파란을 일으켰던 일군의 한류 스타들. 배용준, 권상우, 원빈, 이병헌, 장동건 그리고 박용하. K-POP이 초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지금, 이들의 일본 내 성적표는 어떻게 됐을까.
걸그룹 부럽지 않은 여전한 인기의 원조 한류스타들
일본의 주간지 <플래쉬>는 8월 일본 내 연예인들의 CF 모델료 순위를 공개했다. 일본의 아이돌그룹 AKB48, 쟈니즈 소속의 아라시, SMAP, 인기 골프 선수 이시카와 료 등이 상위권에 랭크된 가운데 장근석의 순위가 눈에 띄었다. 올해 초 산토리의 막걸리 CF로 인기를 끈 장근석은 편당 5000만 엔을 받고 있다. 일견에선 SMAP와 아라시 수준인 9000만 엔을 받고 있다는 설도 나온다. 카라의 출연료 역시 5000만 엔 정도로, 여자 스타 중 아무로 나미에, 아야세 하루카, 후카츠 에리 등과 함께 3위권이다. 그렇다면 욘사마 배용준의 출연료는 얼마일까. <플래쉬>가 공개한 순위에서 배용준의 출연료는 4~5000만 엔이었다. 권상우, 이병헌도 비슷한 수준으로 이들은 모두 10위권 밖에 랭크됐다. 물론 최근의 K-POP 열기를 감안하면 자연스런 순위지만, ‘과거 한류 스타’들의 명성을 재고하게 한다.
9월 17일 일본에서 원빈 주연의 <아저씨>가 개봉했고, 8월 30일 홍보 차 일본을 방문한 원빈을 마중하기 위해 일본 팬들이 공항에 모였다. 9월 3일에는 이벤트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은 배용준을 수천 명의 팬들이 맞이했다. 한편에선 그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동시에 원조 한류의 건재함을 보여줬다는 평도 있었다. K-POP 아이돌의 활황 속에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드라마로 시작된 초기 한류는 일견 침체기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일본 내에서 욘사마와 권상우, 그리고 장동권, 원빈 등이 이끈 한류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일본의 연예지 <할리우드 채널>은 최근 한 기사에서 비디오 업체 관계자의 말을 빌려 “예전보다는 한류 드라마의 판매량이 줄었지만 일정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썼다. 일본 전국 77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아저씨>도 첫 주말 이틀간 3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박스오피스 순위 9위에 올랐다. 많지 않은 스크린 수, 국내 18세 이상 관람가에 해당하는 R15+ 등급임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선전이다.
K-POP 이후 한류가 준비해야할 것
장근석, 소녀시대, 카라. 확실히 최근 한류의 대세는 이들이다. 하지만 붐에는 항상 과한 열기와 거품이 있다. 특히 최근의 엔고(円高) 현상은 국내 콘텐츠의 일본 내 수입가격과 스타들의 출연료를 낮춰 한류의 기세에 도움을 줬다. 소위 ‘신한류’의 주역이 남자 스타가 아닌 걸그룹 중심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다수 스포츠지들은 남성을 타겟 독자로 하기 때문에 남자 연예인들의 기사를 메인으로 싣는 경우가 적었다. 배용준, 권상우, 장동건이 한류에 불을 지폈을 당시에도 그랬다. <산케이스포츠>의 한 관계자는 “한류 스타를 다뤄도 여성이 구매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별 관계가 없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소녀시대, 카라가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 스포츠지는 이전에 없던 또 하나의 한류 매체가 되었다. 현재 <일간스포츠>와 <산케이스포츠>는 한류 소식만을 모아 별도의 타블로이드지를 발행하고 있다.
“욘사마를 필두로 한 기존의 한류 스타가 한 물 간 것이 아니라 장근석과 K-POP이란 새로운 붐 속에 오히려 한류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의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이다. 9월 5일부터 후지TV에선 권상우의 출연작 <대물>이 방영 중이며, 이병헌, 송승헌은 아직도 각종 잡지와 웹사이트에서 실시하는 인기 랭킹에 수시로 등장한다. 지난 9월 8일 도쿄 신주쿠에서는 고 박용하의 회고 전시전도 열렸다. 중년 여성들의 유행이었던 한류는 충실한 일본의 팬 문화 속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일본의 비디오 업체 관계자는 “한류 팬들은 열성적이라 조금만 다른 버전의 DVD가 나와도 모두 사는 경향이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콘텐츠의 퀄리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토양이 새로운 한류를 가능하게 한다. 최근 일본에서 데뷔한 김태희, 끊임없이 등장하는 K-POP 아이돌의 인기는 원조 한류의 성공적인 안착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일본의 엔터테인트먼트 업계가 촉수를 거두지 않고 계속 주시하게 됐다는 것.” 일본의 한 잡지 관계자의 말처럼 중요한 건 새로운 스타의 등장보다 탄탄한 한류 문화의 기반이 아닐까. 화려한 그림 속 지금의 한류가 생각해야 할 건 기존 한류가 거쳐 간 거품의 시대, 그리고 거품이 꺼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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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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