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얼마전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 임금 보다 오히려 적은 임금을 받겠다면서 서명운동을 벌여 사회적 이슈가 됐다.
최저임금을 적용해 직장을 아예 잃게 되느니 차라리 이보다 적은 급여를 받더라고 일을 계속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경비원들 스스로 이같은 제살깎이식 서명운동을 하도록 내몬 것이다.
조만간 중소제조업체들이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를 다시 올려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희한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홈쇼핑 업체들이 납품(입점)업체가 내는 판매(입점) 수수료를 3~7%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백화점 3사와 대형마트 3사, 홈쇼핑 5사 대표와 간담회를 마치고 수수료 인하에 '자율적'으로 합의한 결과다.
각사의 CEO들이 김동수 공정위원장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수료 인하에 합의했지만 유통업체들의 불만또한 만만치 않다. 공정위가 근거로 내민 자료에 대해서도 10년전 적자를 보던 시기의 자료를 인용해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연간 수백억원의 수수료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금이 독재 시대냐', '적자보던 시절로 되돌아가야 하나'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단 유통업계의 손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이번 공정위의 수수료 인하 방침은 문제가 많다. 중ㆍ소 협력업체가 결국에는 고사(枯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중ㆍ소 협력업체의 수수료율을 떨어뜨리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은 수수료율이 낮은 중ㆍ소 납품업체 상품을 배제하고 소위 '잘 나가는' 대형 제조업체의 제품만 들여와 팔 수 도 있다. 굳이 낮은 수수료를 받고, 매출도 많지 않은 중ㆍ소기업의 제품을 들여와 팔지 않아도 대형 유통사들은 매출을 높일 수 있다. 정부도 유통사들의 이 같은 선택을 막을 재간은 없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되면 결국 중ㆍ소 기업들은 거래처를 잃고, 말라 죽게 된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시작한 것이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수수료 인하가 제품 가격인하로 연결될지도 미지수다. 정부에 밉보일 수 없어 울며겨자식으로 나온 이번 수수료 인하정책은 이번 정권의 잔여임기인 500여일 정도만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마이너스(-)만 남기는 정책인 셈이다.
한치 앞만 보고 진행하는 정부의 정책에 결국 대형 유통사는 물론이고, 중ㆍ소 협력사 까지 '불안'만 키우고 있다.
이윤재 기자 gal-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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