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 14회 MBC 수-목 밤 9시 55분
가잠성 전투의 승리 이후에도 계백(이서진)은 한동안 이리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했다. 의자(조재현)가 아버지 무왕(최종환)과 적극적으로 대립하며 존재감을 넓혀가고 은고(송지효)가 사택가문의 양딸로 들어가 이중첩자로 활약하는 모습에 비해, 계백은 여전히 이리처럼 말이 없고 세상사에 무관심할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구들의 반란은 계백의 새로운 각성을 이끌어내고 사택가문의 위기를 불러올 중요한 에피소드였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외적인 스케일이 작은 에피소드였던 만큼 더 촘촘한 이야기 전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사택비(오연수)가 크나큰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은고만 믿고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이나 반복해서 의자 암살에 실패하는 위제단의 무능력함, 그리고 미친 말 소동 하나에 포로를 눈뜨고 놓칠 만큼 어리석은 관군들은 하나같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중한 책사 성충(전노민)이나 “입이 오물통인” 자유분방 지략가 흥수(김유석) 등 인상적인 주요 캐릭터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특히 흥수가 유민촌에서 의자가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발견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왕도 노비도 없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는” 평화로운 공동체. <계백>은 이 혁명과도 같은 유토피아를 제시하며, 이것이 단순한 패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상이 어떻게 현실정치와 부딪히고 좌절하며 역사에 교훈을 남기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그 과정에서 계백이 “사람이 짐승이 아닌, 사람처럼 사는 세상을 위해” 칼을 잡고 갈등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침내 이리를 버리고 승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드라마는 한동안의 느슨하고 긴장감 없는 전개로 활력을 잃은 이야기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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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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