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모텔 주차장서 차량 번호판을 가려 알아보지 못하게 한 행위가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공안녕과 사생활보호의 양팔저울을 놓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추가 놓이는 법원 판결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는 번호판을 가려 알아보지 못하게 한 혐의(자동차관리법 위반)로 기소된 모텔 종업원 이모(35)씨에게 벌금 5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모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사생활 노출을 막기 위해 자동차 번호판을 가린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할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모텔 주차장 번호판 사건에서 종업원이씨는 지난 2008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Y모텔에서 일하던 중 고객 차량 2대의 번호판을 호텔에서 사용하는 간판으로 가려 번호판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이처럼 사생활보호가 화두로 놓인 법원의 판단은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앞서 이달 8일 의정부지법은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제청사건의 심리를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임동규 재판장)는 "간통죄는 성도덕에 맡겨 사회가 자율적으로 질서를 잡아야 할 내밀한 영역이며, 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줄곧 합헌으로 판단되어 오면서도 마지막으로 간통죄가 위헌 심판대에 올랐던 3년 전 옥소리 사건 당시 헌재 전원합의체는 합헌의견 4명, 헌법불합치 1명, 위헌 4명으로 팽팽히 맞섰다. 지난 3월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도 간통죄 폐지로 의견을 모음에 따라 조만간 위헌으로 뒤집히리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판단한 중혼적 사실혼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 서 있다. 대법원 특별1부(이홍훈 주심)는 지난해 10월 법률혼 아내가 있는 퇴역군인 정모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김모(59ㆍ여)씨가 전처 및 정씨의 사망 이후 유족연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우리 법제가 일부일처주의를 채택해 중혼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해도 이를 위반한 때를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하지 않고 취소사유로만 규정하고 있어 중혼에 해당하는 혼인이라도 취소되기 전까지는 유효하게 존속하고 중혼적 사실혼이라고 달리 볼 것이 아니다"며 김씨 손을 들어줬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우리사회 전통과 관습이 너무 급하게 변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해왔고, 이것이 중요한 역할인 것도 맞다"면서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현재의 젊은 법관들이 성장하면서 우리사회에 남아있던 여러 쟁점사안들이 바뀌어나가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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