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 업종 및 품목 지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가 동수로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된다. 민주적 합의 정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대ㆍ중소기업 간 시장질서를 구축하려는 큰 의미까지 담고 있다. 돌이켜 보라. 우리 사회가 언제, 어느 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합의 아래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을 수립했는가.
그럼에도 제도 도입에 따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에 위원회에서도 사회적 이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한 준비를 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대ㆍ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을 조사한 후 해당 기업이 협의해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종업원 수나 시장 규모를 근간으로 제도 운영의 효율성 측면을 고려하며 최소 효율 규모나 생산성 등 중소기업 적합 여부도 조사할 것이다. 소비자 만족도를 근간으로 하는 부정적 효과 방지를 위한 장치도 마련한다.
여기에 실태조사를 근간으로 한 적합성 검토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의견도 반영할 방침이다. 또 대기업의 사업 제한에 따른 근로자 고용문제, 사업이양 시 문제점 등도 점검한다. 즉,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최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구체적인 품목까지 거론하며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부'가 지정되면 대기업이 배제돼 다국적 기업만 좋아질 것이라든가,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든가, 안정성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하지만 부정적 이견이 긍정을 구축할 수 없다. 반대론자들이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P사도 처음 두부를 만들 때는 아주 작은 기업이었다. 당시 P사가 만든 제품이 보호받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식품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대기업이 거의 모든 먹을거리를 장악한 상황에서 과연 P사와 같은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제품도 정부가 제시하는 생산 기준을 준수하며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이를테면 식품위생법에 저촉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면 당연히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따라서 두부가 적합품목으로 지정되면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받을 것이라는 논리는 오히려 중소기업 제품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이 어디 있으며 중소기업만 생산할 수 있는 품목이 어느 세상에 있겠는가. 오죽하면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이 논의를 하게 됐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고유업종 폐지와 외환위기를 거치며 자회사를 하나씩 늘렸다. 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부터 각종 먹을거리는 물론 외식업에 구멍가게까지 싹쓸이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심각한 양극화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리 사회는 선택해야 한다. 사업 철학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기업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장질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금도를 만들 것인가.
대기업은 과거 중소기업이 고유업종 지정으로 누릴 수 있던 혜택의 범주를 넘어 초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대기업은 이를 상기해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일하는 중소기업과의 치킨게임을 지양해야 한다. 이제라도 통 큰 결단을 내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키워 동반 성장하는 진정한 기업상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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