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이 글로벌 최대 화두다. 8일째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롤러코스터 장세는 주요 국가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데서 비롯됐다. 개인이나 국가나 과다한 빚을 견뎌낼 장사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 상황을 '글로벌 재정위기'로 보고 내년 예산편성을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기조에서 점검하라고 지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정치권 생리가 늘 그렇지만 재정 건전성이 이슈로 등장하자 벌써부터 이를 둘러싼 해석이 제각각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과잉복지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선 복지 예산을 줄이는 핑계로 삼아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야당에선 부자 감세와 무리한 4대강 사업이 원인이라며 부자감세 철회를 요구했다.
국가재정 건전성이 어느 한 분야 예산만으로 나빠질 리 없다. 논란의 대상인 복지는 물론 국방ㆍ교육ㆍ사회간접자본(SOC) 등 주요 분야를 고루 치밀하게 살펴 균형 잡힌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도려내야 할 포퓰리즘은 복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예산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문제도 결론 내지 못한 마당에 여당 원내대표는 무상보육 카드를 꺼내들었다.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는 법과 원칙을 무시한 피해보상안을 제기했다.
정부 예산안 편성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대형 국책사업 등 정치권의 선심성 개발 공약을 차단해야 한다. 지난해 예산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형님 예산' '쪽지 예산' 등 실세 정치인의 지역구에 편중되는 봐주기ㆍ끼어넣기 예산도 솎아내야 한다. SOC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중복 예산도 제거 대상이다.
국회는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부터 예산안 심의에 매진해야 한다. 당리당략에 따라 허송세월하다 처리 시한을 넘겨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예산이 온전한 예산일까. 우리 국회는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법정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아직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괜찮다며 안심할 때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긴장감을 갖고 포퓰리즘 예산과 불요불급한 거품 예산을 거둬내야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 군사ㆍ외교 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정 안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