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연의 끝장 토론> tvN 수 밤 10시 30분
토론과 토론 프로그램은 다르다. 입장이나 판단이 나뉘는 사안을 두고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지만,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만큼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백지연의 끝장 토론>(이하 <끝장 토론>)이 지향하는 바 역시 바로 이 ‘보여지는 토론’의 재미다. 시즌 1부터 시그니처로 삼은 핸드헬드 카메라 워킹과 화면 분할, 자막과 인서트 영상 삽입 등은 이를 위한 노력이다. 최근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이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애’라는 가사가 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으면서 촉발된 대중가요 심의 논란을 토론 주제로 삼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무리 ‘토론’보다 ‘프로그램’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데 어제 방송은 이를 놓쳤다.
패널로 참여한 구혜영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과 김민선 아이건강 국민연대 사무국장, 그리고 윤일상 작곡가와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모두 토론의 흐름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각자가 준비해 온 주장을 시간 내에 쏟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서로의 말꼬리를 물기에 바빴다. 백지연은 청소년이 보호의 대상이냐 주체적인 판단이 가능한 존재냐는 쟁점을 두고 “다섯, 여섯 살 아이도 청소년이다”라는 맥락을 벗어난 주장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작곡하실 때 몇 살을 생각하시면서 작곡하세요?”라는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질 뿐, 상황을 조율하지 못 했다. 심의 자체의 적절성과 유효성, 심의 기준의 모호함과 그로 인한 형평성 논란 등 주요 쟁점들을 차례대로 짚어주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부실했다. 이를 보고 있으면 <끝장 토론>의 지향점이 ‘유익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재미있는 싸움 구경을 위해 ‘뜨거운 감자’와 시장 바닥을 제공한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선정적인 표현과 술의 효능에 대한 구체적 기술, 비속어 사용’만큼 중구난방에 공허한 주장이 오가는 토론 프로그램도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유해하다. 물론 <끝장 토론>의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재미있지 조차 않다는 것이지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