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초과이익공유제나 경제용어에서 찾을 수 없는 성의표시를 하라고 강요하더니만 이젠 월급까지 관여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재계 고위관계자가 최근 정부의 대기업 조이기에 대해 한숨을 쉬면서 뱉은 말이다. 대기업이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것저것 말이 안 돼도 그야말로 '성의표시'를 할라치면 그새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또 해달라는데 뻔뻔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재계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대기업 줄 세우기가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시장경제를 소리 높이지만 본심은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며 "궁극적으로 정부의 정책 부재 및 실패를 대기업 탓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발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요즘 정부가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행태가 가관이다. 기업 옥죄기, 줄 세우기, 길들이기 등으로는 설명하지 못 할 입(정부 고위공직자)과 칼(국세청ㆍ공정거래위원회)의 '럭비공식' 타격에 만신창이가 된 형국이다.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가 사회주의로 급선회한 것은 아닌지 정말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저런 깃털 조각을 퍼즐식으로 맞추다 보면 그 몸통은 딱 사회주의 발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재미는 없겠지만 정부의 대기업 줄 세우기를 나열식으로 서술해보자.
먼저 대기업의 금융사업을 규제하면서 서민금융을 위해 삼성ㆍLGㆍSKㆍ포스코 등에 반강제적으로 돈을 내게 해 대출사업을 시킨 미소금융을 꼽을 수 있다. 미소금융은 당초 취지가 무색할 만큼 현재 답보 상태에 놓였다.
'성의표시'로 시작된 정부의 기름값 인하 요구에 따라 정유4사 모두 3개월간 할인 정책을 실시한 결과 지난 2분기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반토막이 났다. 동반성장평가지수 및 초과이익공유제는 고질적 병폐인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취지이지만 대기업 서열화와 경제이론에도 없는 논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 대한 메스도 가해졌다. 정부는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에 과세할 방침이다. 국민연금의 대기업 의결권 행사도 한때 뜨겁게 재계를 달궜다. 물론 삼성 등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찬성한다고 밝혀 정부 측이 다소 머쓱해지기도 했다. 국세청과 공정위는 기계식으로 업종을 불문하고 대기업에 대해 연일 포문을 열었다. 자고 나면 수백억원의 과징금 얘기가 나돌았고 밑도 끝도 없는 세무조사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가격인상 자제를 촉구하면서 식품ㆍ철강 등 관련업종 기업들은 속으로만 끙끙 앓는 형국이 됐다. 고졸 채용도 느닷없이 던져지며 금융권을 비롯해 일부 기업들은 앞다퉈 고졸채용 확대를 발표하는 촌극도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가 국영 주유소를 차리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의 대안주유소 설립 얘기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한민국 경제는 곧 대기업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정경유착으로 고속 성장했다는 국내 대기업의 태생적 한계 때문일까.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대기업=오만, 탐욕, 특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정치권이 그때그때 입맛에 맞게 활용하는지 모를 일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한쪽으로 몰아붙여 상대적 이득을 보는 쪽은 정치적 포퓰리즘밖에 없다. 대기업을 정치적 포퓰리즘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 행위다.
이렇게 몰고 가면 대기업들이 해외로 본사를 옮긴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김영무 기자 ymo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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