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를 떠나 있는 동안 출판 일을 했다. 어느 날 어떤 변호사로부터 내용증명 우편물이 날아 왔다. 내용인즉슨 모 신문사의 책 소개 기사를 귀 출판사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건 저작권법 위반이니 자기가 그 신문사를 대리해 법적 대응절차를 밟겠다는 거였다. 물증은 홈페이지 화면 캡처를 통해 확보해 놓았다는 협박도 덧붙여 있었다.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문제의 책 소개 기사를 재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써 보내준 보도자료의 텍스트를 그 신문사의 아무개 기자가 토씨와 어미만 고쳤을 뿐 거의 그대로 베껴 쓴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저작권자인 내가 되레 저작권법 위반 범죄자로 몰린 셈이었다.
그러나 영세한 출판사가 막강한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법적 권리관계를 다투어봐야 무슨 실익이 있을까. 그 신문사에 "얼마면 불문처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몇 백만원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아는 그 신문사 간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작량경감'을 요구했고, 결국 몇 십만원 정도의 '정보이용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었다. 책 정보를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에 올렸던 신문기사는 모두 삭제했다.
황당했다. 하지만 '신문사가 오죽 형편이 어려웠으면…' '변호사들도 요즘 벌어먹기 힘들다더니…'하며 자위했다. 저작권 제도가 엉뚱한 방향에서 돈벌이 수단이 되는 현실을 경험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저작권법 때문에 저작자가 오히려 손해를 입고 해적행위자와 그 대리인이 돈을 벌기도 하는 것이다.
저작권 제도는 양날의 칼이다. 잘 운영되면 창작활동과 지식전파를 촉진하지만 잘못 운영되면 문화의 발달을 억누른다. 신이 아닌 인간의 창작활동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창작한 것을 가져다가 주물럭거리고 뒤섞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기 생각도 완전한 순정품은 아니다. '리믹스'가 창작활동의 기본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저작권 보호기간은 가급적 짧은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저작물이 폭넓게 공유되는 것이 창작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문화의 발달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현재 '저작자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시점까지'이며, 2년 뒤인 2013년 7월1일부터는 '저작자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시점까지'로 20년 더 늘어난다. 이렇게 된 것은 국회가 지난 6월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인 저작권법 개정안(A안)을 처리할 때 한ㆍ미 FTA 이행법안으로 계류 중이던 저작권법 개정안(B안)의 보호기간 연장 조항을 끼워 넣어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아직 비준되지 않은 한ㆍ미 FTA 관련 법안인 B안의 내용이 A안에 묻어 통과된 것이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저축은행 사태 등 다른 이슈에 집중된 시점에 은근슬쩍 이루어진 국회의 이런 법안 처리로 인해 한ㆍ미 FTA의 비준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 요구대로 저작권 보호기간의 추가연장이 법제화됐다. 이로 인한 국내 출판계와 캐릭터산업계의 피해액이 얼마로 추정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뒤늦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당장의 금전적 피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리믹스의 재료로 활용할 공유지식의 양이 그만큼 축소되는 데서 초래될 '문화적 손실'이다.
세계적으로 저작권 법제의 기준이 돼 온 미국에서도 불과 몇 십년 전인 1970년대까지는 저작권의 유효기간이 평균적으로 '저작 시점부터 30년간'을 넘지 않았다. 저작자의 생존을 전제로 저작 후 30년이 지난 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로 보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작자의 생존기간+사후 70년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자본과 기업 주도의 '공유재 사유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사후에도 70년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니, 상식에 반하지 않는가.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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