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태영 농협 신용대표이사
[대담=박종인 경제담당 부국장 겸 금융부장, 정리=김민진 기자] 열아홉 '부산 사나이'는 1971년 상고 졸업과 동시에 농협에 특채됐다.
주산 8단. 신기(神技)에 가까운 실력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자계산기와 컴퓨터가 대신하지만 당시 주판은 업무 능률을 올려주는 첨단기기였다. 그걸 잘 다룬다는 건 뚜렷한 비교우위였다.
그 사나이는 이제 쉰아홉이 됐고, 그가 40년 청춘을 바친 농협은 다음 달 15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김태영 농협 신용대표이사(59ㆍ사진)의 이야기다(그의 명함에는 '대표이사'란 공식직함과 '은행장'이란 대외 호칭이 함께 적혀있다).
현재 국내 금융 CEO 가운데 한 곳에서 40년 이상 근무한 이는 없다. 지난해 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에서 42년을 근무했다.
김 대표는 농협에서 보기 드물게 줄곧 금융 쪽에서만 일했다. 90년대 비서실에 잠깐 근무했고 대표가 되기 전 기획실장을 한 게 유일한 외도(?)다. 그나마 2년 남짓이다. 경제, 유통 등 업무가 다원화돼 있는 농협의 특성상 찾아보기 쉽지 않은 '한우물'이다.
그게 김 대표의 아쉬움이자 자부심이다.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난 그를 선배들이 놔 주질 않았다.
말단 행원에서 시작해 결국 37년 만인 2008년 신용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농협 금융지주회사 출범(내년 3월1일)을 앞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은행장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금융지주 간판을 다는 최초의 신용대표란 점에서 어깨가 무거운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후배들에게는 그는 "재식이"(이재식 홍보실 국장), "인태"(김인태 금융기획부 팀장)라며 마치 친동생이나 동네 후배에게처럼 친근하고 끈끈한 호칭을 썼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김 대표는 "후배들에게 멋진 희망과 비전을 만들어주고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라며 "금융ㆍ경제 등 양대 지주사가 튼튼히 자리잡을 때 그 이익이 농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뿌리'
그의 첫 마디는 '뿌리'였다. 두 가지 의미로 읽혔는데 하나는 농협이 우리 국민에게 먹거리를 주고 있다는 '농업은 근본'이고, 다른 하나는 '농협의 시작은 금융'이란 메시지였다. 사람 나이로 지천명(知天命)이지만 농협의 뿌리를 만나려면 훨씬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상수(上壽),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100세)'를 훌쩍 뛰어넘어야 농협의 시작을 만날 수 있다. 1907년 농공은행이 만들어지면서 하부조직으로 금융조합이 생겼다.
이후 농협 신용부문은 식산은행(1918년 설립후 1954년 산업은행으로 전환)과 농업은행(1956년 설립후 1961년 중소기업은행과 농협으로 분리) 등을 거쳐 1952년부터 56년까지 전국 읍ㆍ면 단위에 설립된 협동조합과 합쳐져 농협중앙회로 진화했다.
1961년 8월15일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돼 지금의 '종합농협'이 탄생했는데 당시 농업은행이 갖고 있던 대도시 점포 중 한 곳 만을 뺀 36곳을 기업은행에 넘겼다고 한다. 대도시에 농협의 요충 점포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대도시 점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점이 바로 종로지점이예요. 1926년 지어진 건물인데 한때는 신문사 사옥으로도 썼고, 기업은행 본점으로도 사용됐었지요."
김 대표는 최근 조준희 기업은행장과 만난 적이 있는데 조 행장이 농협 종로지점 건물을 팔라고 했다고 한다. 기업은행박물관을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모태는 농협과 같다"면서 "농공은행으로 출발한 농협이 내년이면 '농협은행'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얽히고설킨 농협의 긴 역사를 한마디로 "농협의 뿌리는 그러니까 금융사업"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김 대표는 농협의 역사를 길게 설명한 뒤 "직원들이 뿌리는 알고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에피소드
주판과 먹지로 모든 걸 처리하던 시절. 1970년대 후반 국내에 '도시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일명 재형저축)이란 금융상품이 첫선을 보였다. 왠만한 봉급쟁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던 목돈마련을 위한 통장이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금리가 높았다.
그러나 봉급생활자가 아닌 농민들은 가입할 수가 없었다. 당시 농촌저축과에 근무하던 행원 김태영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농민들도 재형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급준비율을 차등화 해 재원을 마련해서 농민들을 위한 재형저축 자금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농림부가 그의 아이디어를 채택했고, 그는 지준율 차등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며칠간 밤샘작업을 해야 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주산 8단의 실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당시 그가 만든 재형저축이 바로 지금도 남아있는 농어가목돈마련저축이다.
79년에는 농촌저축유공자로 선발돼 당시 최규하 대통령 직무대리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행원이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던 때였다. 책임자급 직원은 국무총리상만 받아도 승진하던 시절이었다.
◇꿈
농협법 개정으로 내년 3월이면 농협에는 금융과 경제, 2개의 지주회사가 만들어진다. 처음 논의 때 신경'분리'(신용과 경제부문 분리)였다가 중간에 '사업구조개편'으로 바뀌었다.
신경분리건 사업구조개편이건 농업인이나 고객 입장에서 중요한 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다. 사업구조개편의 당위성은 농업인과 고객에게 피부로 와 닿는 혜택이나 이득이 있냐는 데서 출발한다.
금융부문에서는 이제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그룹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농협에서는 금융계열사간 시너지를 내고 전문성을 강화해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상품이 만들어져야 고객에게도 이득이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나 프랑스 크레디아그리꼴 등 글로벌 협동조합 금융그룹이 농업금융 전문은행을 꿈꾸는 농협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김 대표는 "단기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체제의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은행부문 인수ㆍ합병(M&A), 글로벌 진출 등 신성장동력 확충, 그룹 자산관리모델 구축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은 100% 토종자본으로 만들어진 흙 냄새 짙은 기업이다. 그래서 수익성과 공익성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게 바로 '같이가는 농협'이며 김 대표가 추구하는 농협금융의 미래이기도 하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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