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사람의 유전정보는 모두 DNA에 담겨 있다는 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보고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전체의학연구소는 마크로젠 생명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2008년부터 추진중인 '아시아인 유전체 다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인 18명의 DNA와 RNA를 동시 분석한 결과, DNA에는 존재하지 않는 RNA 자체 염기 서열 변이(TBM)가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지금까지 생물학에서는 생명 현상을 주관하는 모든 설계도가 DNA에 있고 이것이 RNA를 통해 단백질로 구현된다는 생물학의 중심이론이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동일인의 DNA와 RNA 서열을 동시에 분석한 이번 연구를 통해 RNA 자체에도 대규모 염기서열 변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즉 DNA의 염기서열이 RNA로 똑같이 전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사되는 과정에서 염기가 바뀜으로써 DNA에 없던 변이가 RNA에 새롭게 생기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도 이러한 변이의 존재가 일부 보고된 적은 있으나 모든 염기로의 변환이 다 가능하고, 그런 자리가 최소 1800개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기존 유전체 논문이 단순 DNA 서열만 분석했다면, 이번 논문은 RNA 서열분석을 추가해 유전자의 발현과 그 기능적 측면까지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RNA 서열분석을 통해 상동염색체에 존재하는 한 쌍의 유전자 중 어느 한쪽이 우선적으로 발현되는 '비대칭 발현'과 기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와 비교해도 겹쳐지지 않는 새로운 유전자 후보, 남녀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X염색체 상의 유전자 등도 연구팀이 새롭게 발견했다.
연구팀은 RNA 서열 분석이 향후 인간 유전체 연구의 필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선 교수는 "지금까지는 DNA 특정 변이의 존재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특성과 질병의 대부분이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졌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DNA에 존재하지 않는 변이가 RNA에서 생긴다든가, DNA에 존재하는 변이도 RNA로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CEPH 유럽인, 요루바 아프리카인, 중국인 및 일본인에 이어 한국인의 고해상도 유전체 서열 정보도 보고됐다.
한국인 18명에게서 950만개 이상의 게놈 변이가 밝혀졌는데, 이중 220만개 이상이 기존 연구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한 이런 변이 연구를 통해 한국인에게 잦은 질병이나 잘 듣지 않는 약물 등 기존 연구로 밝혀지지 않았던 현상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보고 있다.
서 교수는 "민족마다 대대로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이에 적응하기 위한 고유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며 "이번 논문은 유럽인과 다른 한민족의 유전체 변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유럽인 중심의 기존 질병 유전자 발굴 연구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은 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3일자(영국 현지시간 기준)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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