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김혜원 기자] # 1. 이명박 대통령이 장·차관 70여명을 불러놓고 '밥그릇 싸움'이란 속어까지 꺼내며 이례적으로 언성을 높인 지난 17일. 그 주말 골프장 예약률은 평균 20~30% 급감했다. 공무원이 자주 드나드는 일부 골프장은 예약 취소율이 40%에 육박했다. 공직자 기강 확립의 잣대가 돼 버린 골프. MB 정부의 사실상 골프 금지령이 된 셈이다.
# 2. 최근 재계의 최대 이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데 다른 후폭풍이다. 삼성발(發) 비리 척결 불씨는 여타 대기업으로 불똥이 번졌다.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수첩에 빼곡히 적힌 주말 골프와 저녁 술자리 약속은 대부분 엑스(X) 표시로 대체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직 사회를 겨냥해 강도 높은 기강 단속에 나선 가운데 '재계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정부패 척결이 공교롭게 맞물리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꽁꽁 얼어붙었다. 기강 확립이 거론될 때마다 가장 먼저 머리를 내미는 '골프 금지령'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관가는 물론 재계에는 불필요한 골프를 최대한 자제하고 법인카드를 이용한 저녁 식사 접대를 줄이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사실상 골프를 금기시하는 청와대 외에 중앙부처 등 공직자들은 주말 골프는 물론 주중 간단한 스크린골프 약속마저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A 씨는 "공직자들이 남의 차를 타고 가서 가명(영일, 호림)으로 골프를 친다는 사실까지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골프를 치러 가겠느냐"고 했다.
경제부처의 B 과장은 "여름휴가를 앞두고 저녁을 겸한 스크린골프 모임을 준비했으나 취소하기로 했다"고 했으며 다른 부처에서도 산하 공기업 담당자들과 골프 자리를 마련해 놓고 감사관실에 문의했다가 "자제하라"는 말을 듣고 백지화했다는 전언이다. 고위 공직자가 자주 찾던 삼성 계열 모 골프장은 지난 주말 예약 취소가 30%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장성들도 골프장 출입을 꺼리고 있다. 지난 4월 골프 금지령이 공식 해제된 이래 골프장을 이용하기 위해 '줄예약'을 해뒀지만 최근 감사가 강화되자 오해받을 만한 약속을 서둘러 취소했다.
재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골프 금지령이 직접적으로 하달된 사례는 없지만 삼성그룹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들이 각자 알아서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C 임원은 "대관 업무를 하다 보니 공무원들과 마주할 일이 많은 편"이라며 "인적이 드문 지방으로 주말 골프를 추진하던 중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경영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골프 금지령을 지키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시작된 노조와의 임금 및 단체 협약(임단협)을 7~8월 반드시 마무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고위 경영진은 "주말 운동에 대해서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이지만 7~8월 임단협 성수기는 제외"라며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노조 문제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업 D 임원은 "최근의 공직 기강 확립 차원의 골프 자제령 분위기는 기업 문화를 투명하게 하는 데 일조하는 긍정적인 차원이 있다"면서도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적발 기준이 애매해 불만이 적잖은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조영주 기자 yjcho@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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