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몇년 전 오아시스 내한공연에서 30대 직장인들의 열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원더월'을 합창하는 이 직장인부대의 광란에 '망나니'로 자자한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마저 움츠러들었을 정도다. 이들에게 오아시스는 인생의 한 부분을 가져간 존재였다. 이렇듯 한 때는 누구에게나 청춘을 바친 밴드가 있다. 음악의 위력이 사그러든 요즘에는 낯선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학교마다 반에 몇 명씩은 꼭 록음악에 빠진 친구들이 있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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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밴드 티셔츠(http://mybandtshirt.tumblr.com/)'는 그런 추억을 모아 놓은 사이트다. 밴드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로부터 어린 시절, 혹은 젊었던 때의 향수를 끌어내는 거다. 이들에게 밴드 티셔츠는 단순한 옷이 아니다. 너무나 사랑했던 음악이 안겨줬던 모든 감상이 깃들어 있다.
아이언 메이든은 주다스 프리스트와 함께 영국 헤비메탈사의 전설이다. 펑크가 지배했던 영국 록씬에 메탈 신드롬을 일으켰던 밴드다. 이 밴드의 티셔츠 역시 빠질 수 없다. "아이언 메이든 티셔츠는 내 두 번째 '밴드 티셔츠'였다." 티셔츠의 그림은 호불호가 확 갈린다. 사납게 생긴 악마가 대지를 화염으로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잘 보면 악마 머릿결이 엄청 좋다. 아마 다들 이 티셔츠가 예쁘다고 생각할 거다."
이 티셔츠는 일종의 아이콘에 가깝다. 1980년대, 록의 성지나 다름없던 리버풀의 젊은 메탈팬이라면 누구나 이 티셔츠를 입고 바나 클럽으로 향했을 거다. 글쓴이는 티셔츠를 처음 샀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를 돌이킨다. "처음 음반가게에서 티셔츠를 사 와서 포장을 벗겼을 때 정말 기뻤다. 꼭 맞았고, 무척 어울렸다."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한 티셔츠는 글쓴이와 똑같이 나이를 먹어 간다. 록페스티벌의 진흙탕 속에 뒹굴면서, 헬멧 없이 사막을 바이크로 횡단하며 점점 낡았다.
AC/DC 티셔츠도 빼놓을 수 없다. 하드록 팬이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밴드다. 이 티셔츠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AC/DC 팬이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다. "날 AC/DC 콘서트에 데려가 준 것은 아버지였다…아버지는 AC/DC 라이브 앨범 카세트를 가지고 있었고 난 그 카세트의 표지에 푹 빠졌다." 덕분에 AC/DC의 콘서트는 굉장한 것이 됐다.
티셔츠도 마찬가지다. "수십년간 이 AC/DC 티셔츠를 정말 좋아했다. 처음 사고서 21년 내내 아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입었을 거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티셔츠에 입혀진 로고가 남아 있다. 요즘 나오는 밴드 티셔츠는 두 번만 입어도 프린트가 다 없어져 버리는데, 이 티셔츠는 진정 기술력의 승리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티셔츠는 남았다. 이 밴드 티셔츠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도구가 됐다. 입을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주 어렸을 때 거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걷던 기쁜 순간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냥 티셔츠라면 불가능했을 거다. 음악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정서가 얽혀있는 옷이 밴드 티셔츠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밴드 티셔츠를 한 장 사라. 수십년이 지나면 티셔츠 한장으로 지금 이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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