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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민간개발사업 불씨 살려야 건설이 산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31초

[충무로에서] 민간개발사업 불씨 살려야 건설이 산다 윤주선 한호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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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도시개발사업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5ㆍ16혁명 이후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부문별로는 공공개발사업과 민간개발사업으로 구분된다. 단지 1990년대 초반까지도 대부분의 사업을 공공이 주도하는 형국이라 민간 차원의 사업들은 주눅 들어 있었을 뿐이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그 사례 중 하나다. 이 사업은 민간이 스스로 개인 토지를 감보해 기반시설 설치공간을 내주고 또 체비지라 불리는 개인 토지를 매각해 택지를 조성하는 민간개발사업의 전형적 수법이다. 일제강점 이후인 1919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이라는 법률을 통해 시행돼 왔으며 해방 후 토지구획정리사업법으로 제정됐고 2002년 도시개발법으로 편입돼 지금에 이른다.

제5공화국에 이르러서는 택지개발사업촉진법의 확대를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시행을 자제하도록 했다. 1986년 5월 서울을 비롯한 5대 도시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공문이 시달됐기 때문이었다. 그 후 대부분의 택지는 공공이 수용해 개발하는 공영개발 방식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많은 도시학자들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문제를 치유하려면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그 폐단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경제부흥기에 공공개발사업 주도의 근거는 민간재원의 결핍에서 찾았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함께 민간재원이 풍부해지면서 그 외의 요소에서 공공 주도의 당위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져 가고 있다. 그 외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도덕성이다. 이윤창출이 목표인 시장을 향한 이 진리의 잣대는 민간 주도를 매우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 항상 유효했다.

1988년은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올림픽선수촌 건설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는 민간건설회사에 눈을 돌렸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민간은 건축 수주(受注)의 수동적 영업방식에서 건축 창주(創注)라는 창조적 경영방식으로 전환했고, 이를 위해 그룹사들을 중심으로 개발사업부를 신설하게 된다.


창주경영이라는 매력은 그 이면에 엄청난 리스크를 깔고 진행되게 마련이다. 마치 벤처와 같이 고수익(High return)ㆍ고위험(High risk)의 게임인 것이다. 1998년 이후의 외환위기와 2008년 이후의 세계경제위기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리스크를 세상에 쏟아내고 말았다. 그 당시 건설인의 미래였고 창주경영의 희망이었던 개발사업부는 회사경영 위기의 주범인 것처럼 몰리고 만다.


진실은 외면한 채 희생양 만들기 좋아하는 사회는 마녀사냥처럼 창주경영의 핵심인 개발사업의 폐해를 무차별하게 지적하는 바람에 모든 공적기관의 명칭에서조차 '개발'이라는 상호를 제외고 만다. 아쉽게도 이러한 편견이 정부가 건설 분야 전반을 보는 시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든다.


지금의 건설회사 부도와 파산 문제가 단순히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이 정부 부처에 팽배해 있다면 앞으로 건설경기는 그야말로 더 극심한 최악의 지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 도시개발은 창주경영의 열매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을 줄여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민영화ㆍ민관 파트너십 등 민간 활력을 도입해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과 공공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도시개발사업 분야에서 민간 부문이 해오던 사업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순순환의 수레바퀴로 시장 질서를 빨리 바로잡는 것이 민간개발사업의 실종에 따른 경제위기를 회복하는 지름길임을 자각할 시점이다.


윤주선 한호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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