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굿'도 한류(韓流) 타고 해외 진출
2월16일 저녁 7시 대치동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철물이굿'
"서산 낙조에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돋건만 인생 한 번 죽어지면 어느 시절 다시 오나 에~" (황해도 민요 '산염불'의 한 구절)
[아시아경제 황상욱 기자] 점점 맥이 끊어져 가는 전통굿과 소리를 새로운 형식으로 승화시켜 해외로까지 진출한 명창 박정욱(46·사진)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평산소놀음굿 예능이수자인 박 선생은 "전통굿은 소리와 움직임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며 "우리의 문화인 굿을 통해 한국만의 전통 문화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965년생인 박 선생은 사실 '굿' 마당에서는 가장 젊은 세대다. 60~70대, 심지어 80대 어르신들이나 향유하던 전통문화를 지천명(知天命)에도 이르지 못한 총각이 넓디 넓은 포부와 함께 세계에 도전하겠다고 하니 '그게 가능할까?'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긴긴 겨울이 끝나가는 듯 싶다가 갑자기 쌀쌀해진 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박 선생은 실제 나이보다도 더 젊어 보이는 의욕적인 청년 그 자체였다. 인터뷰 내내 보여준 그의 모습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굿과 소리를 타고난 듯한 '달인'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외할머니의 손에 자란 박 선생은 선비집안이었던 외가댁의 문화 속에 자연스레 전통문화를 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소리와 굿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산에서 살던 고등학생 시절 소리를 배우겠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본격적인 국악수업에 들어갔다.
어리디 어린 그였지만 감출 수 없는 열정은 1세대로 불리는 수많은 명창, 명인들로부터 사사 받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지난 1987년 작고하신 명창 김정연 선생으로부터는 서도소리를, 평산 출신의 '새우젓 만신(萬神)'으로 불리는 이선비 선생으로부터는 황해도 평산 철물이굿, 소놀음굿을 사사 받았다. 인간문화재 이은관 명창으로부터는 배뱅이굿을, 역시 중요무형문화재인 이은주 선생으로부터는 경기민요를 배웠다.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서도소리 잘하는 청년'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도 탔다. 덕분에 MBC, KBS 등 전국 방송에서 수차례 전파를 타기도 해 이산가족찾기 행사 등에서는 '서도소리'하면 박 선생을 떠올릴 정도가 됐다.
독보적인 2세대 전통문화 명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 그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박 선생은 "지난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철물이굿 공연을 가졌는데 예상외로 엄청난 반향이 돌아왔다"며 "우리 전통문화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공연을 정기화함은 물론 나아가 미국 문화의 심장인 뉴욕 카네기홀에서 굿을 공연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한국식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는 굿이야말로 한류(韓流)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문화 계승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처럼 남북간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소리들을 우리가 잘 지키지 않으면 맥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를 만들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례헌'을 이끌고 있는 것도 모두가 후대에까지 우리 문화를 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박 선생은 매년 정기적으로 해오던 철물이굿을 올해도 준비하고 있다. 철물이굿이란 '철물'이라는 굿을 통해 시절(節)을 물어본다는 의미로 황해도에서 새해를 맞이해 조상과 신명에게 '운이 열리는 때'를 물어 새해 좋은 운을 불러오는 행사다.
명창 박 선생의 올해 철물이굿은 오는 16일 수요일 저녁 7시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열린다. 문의는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02-2232-5749)로 하면 된다.
황상욱 기자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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