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에 돈번다"는 환상 이면에는 비바람 이기는 강력한 체력 등 애환 수두룩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국내 골프장에서는 캐디 없는 플레이가 쉽지 않다.
일단 골퍼들은 거리나 그린의 퍼팅라인을 읽는데 익숙치 못하다. 대다수 골퍼들은 캐디가 아예 볼을 정렬해주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퍼팅의 강도가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캐디가 볼을 정렬해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퍼팅에 실패했을 때 캐디를 탓할 이유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캐디는 피곤하다. 요즘은 캐디 구하기도 만만치 않아 숙달되지 않은 캐디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골퍼들의 요구가 끝이 없다. 클럽 전달은 물론 코스공략법과 거리 계산, 퍼팅라인까지 그야말로 만능이 돼야 한다. 골프장은 또 앞 뒤 팀 간격 유지를 위해 캐디를 닦달한다. 캐디는 과연 어떤 직업일까.
▲ '4~ 5시간 일하고 10만원을 번다?'= 캐디가 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신입이라면 골프장에서 2~ 3개월간 교육을 해주는 데다 숙식이 제공되니 당장의 수입은 없더라도 자신이 투자해야 할 비용이 없다. 여기에 하루 4, 5시간을 일하고 세금 없이 10만원을 번다는 환상도 더해진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하루 두 차례의 라운드로 수입이 두 배가 될 수도 있다.
플레이 시간만 따지면 4, 5시간이 맞다. 캐디에게는 그러나 준비와 마무리 시간을 포함해 3시간 정도가 더 필요하다. 일반 직장인과 별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보통은 2시간 전에 대기한다. 카트에 실려야 할 기본적인 준비물도 챙겨야 하고,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물과 수건 등도 필요하다. 고객 관리가 철저한 골프장에서는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도 체크해 둔다.
▲ 강력한 체력은 '필수'= 무엇보다 강한 체력이 필수적이다. 4명의 골퍼를 위해 매 샷을 할 때마다 1인당 2개씩만 준비한다 쳐도 8개의 클럽을 들고 페어웨이를 뛰어다녀야 한다. 그린에서는 더 바쁘다. 볼 마크를 하고 공을 닦아서 놓아주는 데까지 1인당 최소 두 번 이상을 앉았다 일어난다. 한 홀에서 최소한 여덟 번, 18홀에 앉았다 일어나는 횟수는 144번이 넘는다.
캐디 경력 4년차의 한 캐디는 "볼마크를 직접하는 손님은 정말 고맙다"면서 "4명이 모두 클럽을 기다리고 볼마크와 퍼팅라인을 읽고 볼을 놓아주기까지 기다리는 팀을 만나면 18홀이 18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푸념한다. 이렇게 18홀을 돌고 나면 무릎 통증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벌땅도 있다. 플레이 시간이 지연되면 다음 순번을 건너뛰거나 디봇 제거 등 잡무에도 시달려야 한다.
▲ '계절을 탄다'= 수입이 늘 일정한 것도 아니다. 수입은 당연히 골프장의 휴장 일수와 입장객 수에 비례한다. 겨울철에는 특히 골프장에 따라 휴장비가 지급되기도 하지만 액수가 크지는 않다. 날씨와도 전쟁도 쉽지 않다. 비바람과 더위, 추위에 늘 노출돼 있다. 피부 보호를 위해 한여름에도 긴팔 옷을 두 겹이나 껴입는 까닭이다.
다른 비정규직과는 달리 그러나 고용불안은 덜한 편이다. 소위 명문골프장을 제외하고는 이직률이 높지만 신설골프장 폭증으로 어디가나 취업처는 많다. 캐디 수급이 늘 달리기 때문에 요즘은 캐디가 골프장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캐디 잘만하면 별다른 투자 없이 단기간에 돈을 모을 수도 있는 직업인 반면 역시 프로정신이 필요한 직업이다.
손은정 기자 ej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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