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어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사퇴 담화에서 "아쉬움과 자책감을 뒤로 한 채, 모든 책임과 허물을 짊어지고 떠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생각했던 일들을 이뤄내기에 10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가 불명예 퇴진한 것은 아니지만 10개월 단명 총리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비판적 지식인'이자 '출중한 경제학자'로 알려진 그가 총리에 올랐을 때 국민들은 현장에 밝은 '경제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국정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 총리도 역대 다른 총리들과 다름없이 소신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상처만을 안고 가는 불행한 총리가 됐다.
정 총리가 물러나게 된 직ㆍ간접적인 배경은 역시 '세종시' 문제다. 그가 말한 아쉬움과 자책감도 세종시에서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민의 눈에 '총리 정운찬'의 행적은 오직 '세종시' 한 곳에 매몰된 듯이 비춰졌다. 그가 챙긴 다른 국정이 적지 않았겠지만 세종시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공을 들였으나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총리로서의 동력이 소진되는 순간이었다. 세종시를 둘러싼 정쟁과 갈등을 떠올려 보면 정치 지형이 험난했다는 그의 탄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종시가 남긴 교훈은 그것뿐일까. 아니다. 신념과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신념이 옳다고 해도, 혼신을 다 했다 해도 설득에 실패했다면 분명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는 법이다. 바로 역지사지의 문제다. 정 총리는 총리로 내정되자마자 첫마디로 세종시를 거론했다. 현장의 소리도 듣지 않은 채 그랬다. 일방통행식 소신은 부메랑이 돼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정 총리를 흔들어댄 임기 후반 권력내부의 갈등도 짚고 넘어갈 일이다. 권력 내부에서 정 총리의 사임설을 흘리고, 총리실이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질타를 받는가 하면 실세간 권력투쟁설 속에 총리위상은 갈수록 위축됐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가 정책을 조율하고 부처를 이끌어갈 힘이 생겨날 수 있을까.
새 총리가 곧 임명될 것이다. '정운찬 총리 10개월'이 후임 총리의 역할과 위상을 바르게 매김하는데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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