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회사 경영에 전념하겠습니다."
대기업 오너와 CEO들이 경제단체 수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를 때마다 이를 고사하기 위해 주로 내놓는 변이다.
지난 6일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회장직 사임을 발표한 직후, 차기 후보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거론됐다. 하지만 반나절도 채 안돼 정 회장은 고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이수영 회장이 사임한 후 5개월째 공석 상태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월 이희범 STX에너지ㆍ중공업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했다고 발표했으나 이 회장측이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수락하지 않겠다고 밝혀 물거품이 됐다.
산업계를 대표하는 경제5단체중 두 곳의 회장이 공석인 상태가 됐다. 한국무역협회도 사공 일 회장이 G20 정상회담 준비에만 전념해 본업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으니 대한상공회의소를 제외하면 경제단체는 사실상 '회장 없는' 단체로 전락했다.
후보는 많지만 뒤에서 지원하겠다며 한발 빼는 CEO들. 본가에서는 공격경영을 외치면서 정작 경제단체 활동은 수동적인 모습을 보면 경제단체 대표에 대한 CEO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개발연대 시절에는 기업들의 외형이 작아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따르며 정부와 교감을 나눠야 할 필요성이 많았다. 이러다 보니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정치계 요인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특혜와 신사업 추진에 대한 배려 등이 주어지는 경제단체장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얻을 것이 많은 자리로 여겨졌다.
특히 민간 경제인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전경련은 대기업 오너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대표단체로 회장단들의 활약 덕분에 위상을 키워왔다. 지난 1990년대 중반 당시 갈등이 첨예화 됐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전에서 전경련은 정부를 대신해 이를 해결했는데, 전경련 관계자들은 그 때를 전경련의 전성기였다고 추억하곤 한다.
하지만 창업주와 그들 밑에서 사업을 배운 2세대들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면서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룹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글로벌 사업을 확대해 국내사업의 중요도가 떨어진 마당에 정부가 규제를 대폭 해제했으니 정부에 기대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주주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국가를 위한 대업을 실천하기보다 실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CEO를 더 원하는 풍토도 그들이 한 눈을 팔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정책을 잘못 추진하면 온갖 비난을 떠안고,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의식이 강하니 회사의 얼굴인 CEO들로서는 자신이 굳이 앞장서서 깃발을 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커지고 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의식이 전체 산업계에 퍼졌다고 볼 수 있다.
CEO가 자리를 고사하는 경제단체는 그만큼 힘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난 2007년 회장단 선임 문제로 한차례 내홍을 겪었던 전경련은 당시 '무용론'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회장 선임 절차가 장기화 될 경우 '전경련 무용론'은 또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회사 경영에만 전념한다는 데 무작정 건의를 할 순 없지 않겠느냐"면서 "몸을 던져 헌신한 선대 회장들에 비해 요즘 회장들은 '몸 사리기'가 심해 경제계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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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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