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이른바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정치권이 이에 발맞춰 대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대부분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안들이다.
아동성범죄의 극악성과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안하면 처벌 강화 여론이 달아오르는 건 당연하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사법부 일각에선 '처벌 기준을 강화해 양형 하한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인가'라는 신중론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중론자들은 특정 사건 발생을 전후로 형성된 국민의 일시적 법감정에 따라 처벌을 강화하면 자칫 법적 안정성이나 양형 비례성 등 주요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동성범죄 양형 강화, 문제는 없나? = 2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최근 한 아동성범죄 사건 판결문에서 아동성범죄 사범에겐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도록 한 입법 취지에 의문을 표했다. 어디까지나 해당 사건에 관한 의견이어서 섣불리 일반화 하는 건 어렵겠지만, 아동성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전반적 고찰인 만큼 최근의 여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게 법원 설명이다.
재판부는 "욕망과 정념에 따라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제1의 원리인 '남의 생명을 빼앗지 말라'는 원칙을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 하한은 징역 5년"이라면서 "구체적인 경우 여러 양형요소를 참작해 집행유예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와 비교해 본다면, 형사정책상 그리고 우리 국민의 법감정상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에 대해 높은 처벌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어떤 경우라도 집행유예를 원천 봉쇄한 입법의 타당성에 대해 이 법원은 다소 의문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처벌 강화만이 능사?…자칫 부작용 우려" = 이같은 지적은 특정 사건을 기화로 만들어진 국민 법감정이나 이에 따른 여론을 반영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자칫 법적 안정성과 양형 비례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이기·질투·시기·독선·투쟁욕·권력욕·복수심·타인의 불행에 대한 희열감 등이 '법감정'이란 옷을 입는 수가 있고 이는 사회 이목을 끄는 특정 사건 발생을 전후로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며 "여기에 치우쳐 형벌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면 오랜 경험과 논의를 통해 형성된 형벌 체계가 흔들릴 수 있고 다른 범죄에 대한 양형에도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법원 관계자는 "처벌 강화도 (범죄 예방을 위한)하나의 방법일 순 있지만 결코 능사는 아니다"라며 "일시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양형 기준을 조정하면 오히려 사법 가치들이 훼손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양형 하한을 높이고 이에 따라서 '누구는 몇 년형, 누구는 몇 년형'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선고를 해버리는 것 자체는 사실 쉬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개별 사건의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속에서 가장 적정한 양형을 찾는 게 법관의 의무다. 스펙트럼을 지나치게 넓혀서 단순하게 선고하는 것은 굉장히 원시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나아가 "대부분의 형사사건 담당 법관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양형 하한만을 높여 '필벌주의'가 아닌 '엄벌주의' 쪽으로만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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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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