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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담긴 성범죄 판결문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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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한 고등법원 재판부가 아동성범죄 사건에 관한 깊은 고민을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소상하게 담아 관심을 모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특정 사건 발생에 따라 가열되는 국민 다수의 일시적 법감정이나, 이를 반영한 법원 판단이 자칫 형벌체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적극 표했고, 피해자 어머니의 절절한 선처 호소를 둘러싼 철학적 고뇌의 흔적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건 이야기 = 18일 법원에 따르면, 남편과 이혼하고 충북 충주에서 혼자 딸(10)과 아들(6)을 키우던 A씨는 지난 해 2월부터 B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A씨는 B씨와 혼인신고를 하진 않았지만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어려운 가계형편 속에서도 부부의 연을 이어갔다.


A씨 가족은 식당 운영이 어려워지자 올 3월 상경했다. 여관방을 전전하며 버티던 A씨 가족은 가까스로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내는 옥탑방을 구해 살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지난 7월 B씨가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질렀다.

술을 마시고 A씨와 말다툼을 벌인 어느 날, B씨는 홧김에 집을 나가 피시방에 머물고 있었다. B씨가 마음에 걸린 A씨는 화해 표시로 도시락을 만들어 자녀들 편에 B씨에게 전했다.


도시락을 받은 B씨는 A씨 아들만 집으로 돌려보낸 뒤 근처 여관으로 딸을 데려가 성폭행 했다. A씨 딸은 B씨가 지쳐 쓰러진 틈을 타 여관을 빠져나갔고,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재판에 넘겨진 B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항소했다.


재판부의 고민 =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A씨가 법정을 찾아 B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자신과 아이들이 '의식주' 때문에 고생하는 상황이고, 만약 B씨가 옥살이를 하면 당장 살아갈 일이 막막해진다고 하소연했다. 피해를 입은 딸도 잘 극복하고 있는 만큼 새 출발을 해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A씨 뱃속에는 B씨 친자식이 자라고 있었다. 재판부는 우선 아동성범죄 처벌 법규를 고찰했다.


"피고인의 범행은 13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것으로, 형법상 처벌 하한이 징역 7년이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해서는 모든 유리한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순 없다. 그런데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제1의 원리인 '남의 생명을 빼앗지 말라'는 원칙을 위반한 자에 대한 형법상 처벌 하한은 징역 5년이다. 구체적인 경우, 여러 양형요소를 참작해 집행유예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집유 원천봉쇄 취지는 의문" = B씨에게 선고 가능한 최저형은 징역 3년6월 실형. 재판부는 아동성범죄자에 대해 높은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법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에게조차 허락된 집행유예 여지를 원천 봉쇄한 입법 취지에 관해선 의문을 표했다.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원천 봉쇄한 입법의 타당성에 대해 이 법원은 다소 의문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기ㆍ질투ㆍ시기ㆍ독선ㆍ복수심ㆍ투쟁욕ㆍ타인의 불행에 대한 희열감 등이 법감정이란 옷을 입는 수도 있고, 이 같은 법감정은 사회 이목을 끄는 특정사건 발생을 전후로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으므로 여기에 치우쳐 형벌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면 오랜 경험과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형벌체계를 뒤흔들고 다른 범죄 양형에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아동성범죄 양형을 정할 때 성폭력범죄 및 피해자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면서 범죄자의 연령ㆍ성행ㆍ환경ㆍ피해자와의 관계ㆍ범행 후의 정황 등 일반 양형요소를 모두 참작하고 형벌과 양형에 관한 여러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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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습은 모두 달라…감형요소 최대 반영" = 재판부는 법리 고찰에 이어 A씨의 하소연을 돌아봤고, 철학적 고뇌 끝에 A씨 호소를 최대한 받아들였다. B씨에게는 감형 요소를 최대 적용해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죄를 논할 때는 피고인과 피해자,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사람을 선도함에 있어서는 그 사람의 속에 남아있는 선을 활용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언명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삶에 대한 지혜가 부족한 이 법원으로서는, 자신의 딸을 강간한 피고인을 선처해달라는 A씨 심정이 어떠한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A씨가 피고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세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엄마로서 본능적으로 무엇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지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원은 피고인이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다짐하는데 도움을 주고 A씨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다소나마 용기를 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상처받은 영혼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꿋꿋이 커나가기를 바라면서 법이 부여한 감형권한을 최대한 행사해 형을 선고한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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