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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보도, 과학인가 '읽을 거리'인가

과학적 증거에만 매몰되면 질병보도는 너무 딱딱하거나 때로는 결론없는 미제사건의 나열에 그친다. 반대로 사소한 증거를 비약해 자극을 주자치면 독자들은 근거없는 공포감 혹은 허황된 희망을 강요받을 위험이 크다.


이 두가지 극단적 오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의학담당 기자들의 고민은 최근 열린 세계과학기자총회(WCSJ 2009, 사진)에서의 주된 논의점 중 하나였다.

우선 후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 것이 최근 신종플루 보도행태였다. 관련 세션에 참가한 언론인들은 "돼지독감(신종플루)이 이 정도 논란거리에 해당하는 주제는 아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불확실하다면 '불확실하다'고 말했어야 했다며 언론의 호들갑이 이집트 돼지 집단 도축 같은 비극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용어 선택의 정당성도 도마위에 올랐다. 현재 영국이나 미국 언론은 '돼지독감(swine flu)'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왕립런던병원의 존 옥스포드 교수 등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관광수입 감소를 우려한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독감'을 기피했고, 주요 선진국이 돼지고기 수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돼지독감'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암(癌) 보도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논의한 세션에서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마는 기사가 과연 적절한 것이냐"는 정반대의 논의가 오갔다. 참가한 과학자들은 흔히 '획기적'이란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 암 관련 보도는 문제라는 취지로 발표했으나 언론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질병기사가 과학적 균형감 만을 강조하다보면,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독자 외 누구도 기사를 읽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독자들은 실질적인 정보 즉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는 메시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보도는 꼭 어려워야 하는가'란 세션에서도 언론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더비셔 환경 편집장은 "정확하기만 하다면 가장 재미있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며 대중을 지향하는 과학기사를 주창했다. 'Scidev.net' 아프리카 판 편집장인 스코트 씨도 "과학기자들은 지면 확보를 위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경쟁해야 한다"며 "엘리트주의를 고수하면 공룡과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읽히는' 과학기사를 갈망하는 이들의 의견은 서구 언론에서 감소추세에 있는 과학지면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CNN은 지난해 과학 및 환경부서를 폐지했으며, 미국 언론에서 과학 지면은 지난 16년간 절반으로 줄었다. 건강면은 '라이프스타일'로 통폐합되고, 과학면은 '비즈니스' 혹은 주말판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살아남기 위해선 '쉬워져야 한다'는 요구와, 재미있으면서도 제한적인 증거를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이 어디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뒤섞인 논의였다.


세계과학기자협회(WFSJ)가 주최한 이번 총회는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2011년 열리는 다음 대회는 제3세계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다.




런던=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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