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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파이팅! 할아빠, 할엄마

시계아이콘01분 55초 소요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다짜고짜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80세가 다 된 친정아버지가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방을 집에 꾸며놓고, 친구의 남동생에게 주말마다 아이를 집으로 보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주말마다 아이를 할아버지에게 맡기면 이른바 버릇이 나빠지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서먹해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한(恨)을 손자에게 풀려는 듯한 모습을 보며 부모 노릇마저 빼앗긴 동생이 너무 딱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단호하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동생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하소연을 듣다보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카페에서 지나친 손자 사랑에 힘겨워하는 며느리들의 하소연을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궁금증을 키워가다 노인들과 동석할 기회가 있어 여쭈어봤습니다. 그때 60대 초반 남자분들의 이야기는 다시한번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제가 “어른들의 지나친 손자 사랑에 며느리들이 힘겨워하는데 과잉 사랑은 월권이 아니냐”고 묻자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손자가 없으면 그 심정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자식을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손자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놓고 자주 놀러오도록 한다”는 등 ‘손주 사랑법’을 얘기하셨습니다. ‘할아버지’라는 말이 싫어 손자에게 ‘할아빠’로 부르게 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손자를 귀여워 하면 할아버지 상투를 잡는다’며 절제되지 않은 손자 사랑을 경계하던 옛 어른들의 말이 무색하게 들리더군요.



얼마 전 택시를 탔을 때, 60대 정도로 보이는 기사분이 자신이 워낙 일찍 결혼을 해 자식키우는 재미가 뭔지도 몰랐는데, 이제 손자를 보니 너무 예뻐 아예 집에 데려다놓고 키운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습니다.



할머니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손자 봐주기 싫으면 영어발음을 엉망으로 해라 그러면 아이들 영어공부에 올인하는 며느리들이 기겁하여 손주를 맡기지 않는다’ 는 말이 있는데, 이또한 옛말이 된 듯합니다. 맞벌이가 늘면서 전문적으로 손자 키우기 요령을 알려주는 할머니교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딸의 육아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아예 딸네 집에 들어가 스케줄까지 세워놓고 전적으로 손녀 키우기에 올인하는 할머니들이 있다는 얘기도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자녀가 이혼을 해 할 수 없이 손자를 돌봐주는 노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할머니들이 이렇게 전적으로 육아를 책임져준다면 젊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중 하나는 맞벌이와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 활동의 장(場)이 마련되지 않자 고학력 여성들의 에너지가 아줌마의 치맛바람으로 표출되었듯이 교육수준 높고 사회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활동공간이 마련되지 않으면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너지가 노인 당사자는 물론 그 주변, 사회에 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창조적이고 탁월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가 함께 여행하는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합니다. 특히 ‘그랜드 트래블(Grand travel)’ 이라는 여행 상품이 미국 베이비붐 세대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1996년 처음 소개된 이 상품은 고객이 10년 사이 60% 이상 증가했고 미국 어린이들이 떠나는 여행상품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니어저널>이란 잡지는 이 상품을 할머니에겐 여행의 즐거움을 주고, 아이들에겐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부모에겐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고 치켜세웁니다.



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의식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령사회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난감하고, 그들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미지근하기만 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리봄 디자이너 조연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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