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떠나니 사회서 사라졌다'…교문 밖은 혹독한 낙인[보이지 않는 아이들]①

신분 숨기려 성인 요금 내는 아이들
편견이 만든 자발적 투명 인간
학교 밖 청소년 인프라 격차 '천차만별'

"띡" 버스 단말기에서 울리는 단조로운 기계음은 여고생 최모양(17)에게 안도감을 주는 소리다. 청소년 요금 혜택을 포기하고 성인 요금을 내는 이유는 단 하나. "청소년입니다"라는 알림음이 울릴 때 쏟아질지 모를 "학교 안 가고 뭐 하느냐"는 시선이 두려워서다. 하지만 최양이 숨어야 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꿈드림). 서울 중구 청소년지원센터 홈페이지.

23일 아시아경제가 만난 경기 성남시에 사는 A군(19)의 자퇴는 생존 그 자체였다. 성소수자인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교사에게 "동성애는 해롭다"는 혐오 발언을 들었고, 또래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다. A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편견 섞인 시선이 계속됐다"며 "학교에는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 결국 살기 위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광주의 장하은양(18)은 '꿈'을 위해 고등학교를 미진학했다. 코딩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지만 관련 고교 진학이 좌절됐고, 인간관계의 피로감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장양에게 학교 밖 세상은 오롯이 코딩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었다.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최양(17)은 통학 거리와 건강 문제로 고2 1학기에 펜을 놓았다. 왕복 8km의 등교 전쟁으로 수면 부족과 성적 하락에 시달리던 그는 "자퇴 후 수능을 준비해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결단을 내렸다.

문제는 학교 밖을 선택하자마자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사라지자 소속감 부재와 사회적 편견이 이들을 덮쳤다. A군은 "소속이 사라지니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낮 시간에 이웃을 마주치면 조퇴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할머니께는 아예 자퇴 사실을 숨기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최양은 "평일 낮에 대중교통을 탈 때면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늘 긴장한다"며 "미래에 배우자나 아이가 나의 자퇴 사실을 알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 벌써 불안하다"고 자조 섞인 속내를 비쳤다.

관계의 단절은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장양은 "학교에서는 싫든 좋든 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익히지만 학교 밖에서는 또래를 만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대안학교는 분위기가 맞지 않아 겉돌았고, 오픈채팅방은 익명성 뒤에 숨은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학교를 벗어나니 사회에서 지워진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호소다.

공적 지원 체계인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꿈드림)'가 있지만 아이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A군은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가 다양한 만큼 필요한 지원도 제각각인데, 센터 프로그램은 천편일률적인 자립이나 취업 중심"이라며 "정작 마음을 다친 아이들에게 필요한 심리적 위안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장양 역시 "고립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또래와 교류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한데 내가 사는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업형 청소년들도 소외되긴 마찬가지다. 최양은 "꿈드림의 학습 지원은 대부분 검정고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대입 공부 계획을 세워주거나 목표를 잡아줄 조력자가 없어 혼자 입시와 싸우며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성평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꿈드림센터 이용자 수는 2023년 3만8329명에서 2024년 3만9930명, 2025년 1~6월 3만3019명으로 증가 추세다. 하지만 인프라의 지역 격차는 여전하다. 센터가 경기(32개소)와 서울(26개소)에 집중된 반면 세종(1개소), 제주(3개소), 울산(5개소) 등은 한 자릿수에 그쳐 지원 사각지대가 뚜렷한 실정이다.

사회부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사회부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사회부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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