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그린란드 야욕' 흔들어대는 트럼프…침묵하는 나토에 '유럽 분노'

뤼터 사무총장 이례적 침묵
"나토가 논의 시작해야" 지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초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영토 야욕을 드러내며 동맹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나토는 미국에 대응하지 않으며 유럽이 분노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시간)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나토는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영토 주권을 강조하는 공식적인 성명을 내는 등 대응에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 나토의 유럽 내 주요 회원국들이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연대를 표명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그린란드. AFP연합뉴스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평소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등 주요 현안에서 엇박자를 내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나토 회원국에 영향을 미치는 이처럼 중요한 안보 문제에 침묵을 지키는 일은 이례적이다.

뤼터 사무총장이 이번 그린란드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은 CNN의 질문에 60초가량 답변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그린란드 주변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에 동의하며, 안보를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

한 유럽연합(EU)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소통에 있어 유럽이 의지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지던 뤼터 사무총장이 이렇게까지 조용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나토의 한 외교관은 "이런 문제를 나토 내부에서 논의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면서도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우리가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EU 지휘부도 침묵을 깨고 그린란드 편에서 목소리를 낸 것과 비교하면 뤼터 사무총장의 이런 대응은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FT는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법은 무력보다 강하다"며 미국이 국제법에 따라 영토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덴마크와 그린란드 사안이 당사자들 없이 결정될 수는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영토 야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럽 당국자들은 미국이 나토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대응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나토가 계속 침묵을 지킬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무소불위식 행동과 유럽의 대미 안보 의존을 이용하는 행태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린란드 관련 문제에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으나, 최근 "만약 미국이 또 다른 나토 국가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면 이는 나토의 '종말'"이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이 발언엔 나토의 침묵에 대한 짜증이 녹아 있다고 유럽 당국자들은 FT에 전했다.

이번 사태를 풀기 위해 나토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덴마크 정치권은 미국과의 분쟁에서 나토가 더 강력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도우파 정당 자유동맹의 카르스텐 바흐 의원은 "나토의 한 회원국인 미국은 북극권에서 위협을 인식하고 있는데, 그 위협은 나머지 회원국에는 그리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며 "따라서 나토는 이번 갈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지난 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당사국이 나토 동맹국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한 압박을 줄이거나 완화하기 위해 나토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앨리슨 하트 나토 대변인은 나토의 입장을 묻는 FT의 질문에 "외교적 논의의 세부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뤼터) 사무총장은 언제나처럼 대서양 양안의 지도자 및 고위 당국자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제부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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