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기자
부산에서 자동차 표면처리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노란봉투법' 추진 소식에 눈앞이 캄캄하다. 이씨가 운영하는 기업은 근로자 30명 남짓의 중소기업이다. 완성차 업체가 발주한 생산 물량에 대해 프레스(차체를 찍어내는 공정)·조립 등의 초기 공정이 끝나면, 납품 전 마지막으로 자동차 표면에 얇은 금속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원청을 비롯한 상위 업체에서 파업으로 인한 운영상 차질이 발생하면 이씨 기업은 그야말로 '올 스톱' 상태가 된다. 이 기간 인건비 등의 고정비는 눈덩이처럼 불어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온다.
이씨는 "노란봉투법으로 작업이 장기 중단되는 것도 문제지만, 노사 교섭이 타결돼도 주 52시간제로는 납기일을 맞추기 어렵다"며 "'대기업이 재채기하면 하청업체는 몸살감기로 쓰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더 크고 빈번하게 타격받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차체가 조립되고 있다. 아시아경제DB
노란봉투법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수많은 중소 협력사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과 중단을 넘어, 원청과의 거래 관계 자체가 끊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계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방송 3법·양곡관리법 등을 통과시켰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중소기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사용자의 범위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확대한 내용이다. 기존에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자'로 제한했던 것과 달리, 만일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원청 역시 하청 노조의 교섭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파업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원청이 노조가 있는 중소 협력사와의 계약 관계 자체를 끊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경기 양주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원청 입장에선 여러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을 텐데, 파업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대체 가능한 다른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지 않겠나"라며 "중소기업 입장에선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위험에 항시 노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기업이라고 해도 안심할 순 없다. 파업의 범위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에 대한 부분이 추가되면서다. 사업상 판단까지 노동 쟁의 대상으로 인정돼 원청의 파업이 이전보다 잦아지면,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생산 중단과 임금 체불 등으로 인한 피해를 더 자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노조가 없는 기업이라고 해도 원청 파업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의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계는 법안 처리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로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에 훨씬 치명적"이라며 "주요 경제단체들과의 공동대응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으로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