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정치스페셜리스트
1962년, 강원도 철원 동송읍에서 태어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원내대표에 비대위원장까지 지낸 전직 4선 의원이다. 대개 초·재선급이 역대 정무수석을 맡아 왔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례적이다. 전직 3선 의원인 강훈식 비서실장(1973년생)보다 선수가 높고 나이도 11살 많다. 정치적인 체급이나 경험, 부드러운 성격 등을 종합해보면 우 수석은 대통령실 내에서 '큰 형님'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타협과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소신, 국정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정무 감각, 대변인을 8번이나 지내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 이유를 설명하고, 비명계 전직 의원들의 모임인 '초일회'와 만찬을 하는 등 이미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8일 우 수석을 임명하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야 상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춘 인물로 통합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랜 의정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와 합리성 뛰어난 정무 감각을 겸비해 대통령실과 국회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동송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해 온 우 수석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용문고등학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재학 시절 '연세문학회'에 가입해 5월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꿨으나 시대 흐름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30사단에서 박격포병으로 근무하다 1985년 제대한 그는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통상 학생운동을 하다가도 군대 갔다 오면 취직을 생각하는데, 우 수석은 반대로 제대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당시 연세대 국문과 학생회장)와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친구) 등이었다.
1987년 이른바 6월 항쟁 때 우 수석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 고려대 이인영-연세대 우상호는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다. 우 수석은 당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서 사망하는 현장에 있었다. 그는 지금도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서대문갑에 출마하면서 제도 정치권에 진입했다. 이때부터 연세대 학도호국단장을 지낸 이성헌 서대문구청장과의 '맞수 대결'이 펼쳐졌다. 두 사람은 6번 맞붙어 우 수석이 4번 이겼다. 우 수석이 민주당 원내대표일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진행됐다. 2022년에는 비대위원장,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4년 총선 때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앞으로 정치권에서 더 역할이 없고 초·재선 때의 열정도 식었다는 것이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였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왼쪽)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5.6.10 김현민 기자
대신 뜻을 둔 것이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우 수석은 그동안 2018년, 2021년 두 번 서울시장에 도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박영선 전 의원, 박원순 전 시장 등에게 밀려 꿈을 접어야 했다. 정치권에서는 우 수석이 내년 강원도지사 선거에 도전할 것으로 본다. 이번 대선 때도 강원도 지역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했었다. 고향이 강원도 철원이고, 우 수석 외 마땅한 경쟁력 있는 민주당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의 순항은 우 수석의 정치적 미래와 관련해서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상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