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기자
영풍·MBK파트너스(MBK)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다음 달 23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회 이사 수 19명 상한 등의 안건을 다룬다. 이번 임시주총에서는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이 경영권을 놓고 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소액주주 권한 및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안건을 임시주총에 올리기로 의결했다. 안건에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과 소수 주주 보호 규정 신설, 분기 배당 도입, 발행주식의 액면 분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달 유상증자 철회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의 이사 수 상한을 19명으로 설정하는 방안과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도 임시주총에서 다뤄진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가 소수 주주들의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상법상 대표적인 '소액주주 권리 보호 방안'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려아연은 이사 수 상한의 경우 이사회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가 권고하는 상장 기업의 적정 이사 수 '20명 미만'과 ISS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이사 수가 지나치게 적거나 많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이사 수 상한'을 설정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가 총 13명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영풍·MBK 연합 측이 14명의 신규 이사 선임 등을 요구한 데 대한 방어장치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이 제안한 후보자가 모두 선임되면 이사회 멤버가 총 27명으로 늘어나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이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며 "임시주총 안건으로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하는 '이사 수 상한 규정'을 정관에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아울러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외국인 및 재무 전문가, 위기관리 전문가 등을 사외이사로 추가 선임하고 여성 사외이사를 추천하기로 한 안건도 임시주총에 올렸다. 사외이사 2명이 참여하는 대표이사 자문기구로 운영되던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상법상 이사회 산하의 위원회인 'ESG위원회'로 승격하는 안도 논의될 예정이다.
소수주주보호 규정 신설과 분기배당 도입, 발행 주식 액면 분할 안건도 확정했다. 분기배당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중간배당에 더해 3월과 6월, 9월 말일을 기점으로 분기배당을 시행하는 것이다. 발행 주식의 액면 분할 안건은 최근 고려아연 주가와 거래량 부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영풍·MBK 연합이 제안했다. 앞서 MBK·영풍 측이 제안한 집행임원제도 도입과 14명 이사 선임 안건도 모두 상정된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회사와 주주에게 도움 되는 것이라면 어떠한 안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MBK·영풍은 보도자료를 내고 "표 대결 판세에서 불리한 최윤범 회장이 주주 간 분쟁 상황을 지속시키고 어떻게 하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악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선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최 회장 측 지분의 의결권을 본인이 추천한 이사들에게 집중해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선임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상법 제542조의 7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가 집중투표가 배제된 정관을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도록 변경하려는 경우,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번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은 이사회가 아니라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으로 상정됐다. 유미개발은 최씨 일가의 지분율이 88% 이상인 회사다.
집중투표제 안건을 투표할 때 영풍(24.42%)과 MBK(7.82%)는 각각 최대 3%씩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수관계인과 우호세력으로 지분이 더 잘게 쪼개져 있는 최 회장 측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또한 집중투표제 도입과 동시에 이를 통한 이사를 선임하자고 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소수주주 입장에선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것을 알았다면 행사했을 수도 있는 이사후보 추천권 행사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이 같은 안건 상정은 결국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을 연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영풍·MBK 연합은 주장했다.
MBK는 "이번 임시주총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관이 개정되더라도, 법률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소수주주들의 참여 기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집중투표제 시행에 따른 이사 선임은 다음 주총부터 돼야한다"라며 "최 회장 측의 주주제안은 다른 주주들의 권리와 가치는 무시한 채 오로지 최 회장만을 위한 안건임을 입증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