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기자
미국 정부가 미국 현지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에 지급할 보조금을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로 최종 결정됐다. 지난 4월 양측이 예비거래각서(PMT)를 서명할 때 발표한 64억달러(약 9조2000억원)에 비해선 약 26% 감액됐다.
금액은 당초 원안보다 다소 줄었지만, 그간 기다려왔던 보조금 지급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은 데 큰 의의가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한 테일러 공장 건설에 탄력을 붙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20일(현지시간) 예비거래각서 체결과 부처 차원의 실사 완료에 이어 반도체법에 따라 약 6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삼성전자에 직접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삼성이 향후 수년간 370억달러(약 53조원) 이상을 투자해 텍사스주 중부에 위치한 현재의 반도체 생산 시설을 미국 내 첨단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의 종합적 생태계로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고 상무부는 설명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삼성에 대한 이번 투자로 미국은 세계 5대 최첨단 반도체 제조업체가 모두 진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인공지능(AI)과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최첨단 반도체의 안정적인 국내 공급을 보장하는 동시에 수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삼성전자의 보조금은 인텔(78억6500만달러)과 TSMC(66억달러), 마이크론(61억6500만달러)보다도 적다. 하지만 기업별 투자금 대비 보조금 비율을 따져보면 삼성전자의 보조금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투자금 대비 보조금 비율은 12.7%로,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12.3%)이나 인텔(8.7%)보다 높다. 지난 19일 미국과 직접 보조금 지급 계약을 맺은 SK하이닉스의 투자금 대비 보조금 비율은 11.8%, 대만 TSMC는 10.3%다.
보조금 감액은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이 일부 변경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에 총 44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예비거래각서를 맺고 미국 정부와 협상해 왔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최종 투자 규모를 '370억달러 이상'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효율적인 글로벌 투자 집행을 위해 일부 변경된 중장기 투자 계획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최근 평택캠퍼스, 기흥 NRD-K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첨단 패키징을 포함한 연구개발(R&D)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에 대한 충분한 생산 능력(캐파)을 확보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달 18일 설비 반입식을 한 기흥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건설 중인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단지로, 메모리와 시스템, 파운드리 등 반도체 전 분야의 기술 연구 및 제품 개발이 모두 이뤄진다. 내년 중순 본격 가동될 예정으로, 2030년까지 총 투자 규모만 20조원이다. 아울러 2030년부터 용인 국가산단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라인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 부진의 여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수주 부진 등으로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도 수조 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일부 설비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가동률 조절에 나선 상태다. 2022년 착공한 테일러 공장의 경우 당초 올해 하반기 가동이 목표였으나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현재는 가동 시점이 2026년으로 미뤄졌다.
삼성전자는 이번 미 상무부와의 협상을 토대로 첨단 미세공정 개발, 테일러 공장 건설, 고객 유치 등에 박차를 가해 2026년 테일러 공장 가동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에 최첨단 로직 생산 라인과 연구개발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테일러 공장을 미국 내 첨단 미세공정 구현 및 연구개발 중심지로 육성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