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플랫폼 전쟁터 된 日 고향납세 시장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 10월 ‘사토후루’라는 고향납세 사이트를 오픈했다. 마을의 사토(里)와 가득하다(full)의 일본어 발음(후루)를 합친 것이다. 현재 전국 1200여곳의 지자체와 연계해 40만개의 답례품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아마존 고향’이라는 서비스명으로 내년 고향납세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 롤모델은 일본 ‘고향납세’다. 자신의 고향이나 기부하고 싶은 지역을 선택한 후 해당 지자체에 2000엔(1만 8000원) 이상 기부하면 기부금 수령증명서와 답례품을 전달하고,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고향납세 기부 총액은 1조1175억엔(10조원)으로 1조엔 시대를 열었다. 2008년 제도 시행 이후 15년 만이다. 고향납세로 주민세 공제를 받은 사람은 전년대비 107만명 증가한 1000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주민세를 내는 사람(6000만명) 6명 중 1명이 고향납세를 하고 답례품을 받은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공공 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에서만 모금이 가능하다. 일본도 처음에는 관 주도였다가 2014년 민간에 개방했다. 이 때부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고향납세 사이트는 30여개가 넘는다. 후루사토 초이스, 라쿠텐, 사토후루, 후루나비, 후발주자인 소프트뱅크 등 상위 5곳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기부자는 민간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쇼핑하듯 기부하고 답례품을 고르고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다. 배송도 빠르다. 이용실적에 따라 포인트도 적립된다. 플랫폼 사업자은 매출과 수익성 확대, 고객확보 면에서 매력적이다. 또한 민간 플랫폼을 활용해 모금한 지자체로부터 기부금의 최대 10%를 수수료로 받는다.

사업자간에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본 정부가 "고향을 살리자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며 포인트 적립 금지를 추진할 정도다. 라쿠텐이 앞장서 185만명의 반대 서명을 이끌어내자 내년 10월 시행으로 미루어진 상태다. 라쿠텐 등은 "포인트는 플랫폼이 부담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면서 "소프트뱅크나 아마존 등이 진입해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수료도 낮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난해 첫해 243개 자치단체에서 56만6000건, 651억원이 모금됐다. 1800여개 자치단체에서 1000만건 이상, 10조원의 일본과 비교하기 어렵다. 올 들어 10월 23일까지 모금된 기부금 총액은 325억 원, 기부 건수는 24만8000건으로 전년동기와 비교하면 각각 0.6%, 11%증가했다. 정부는 "올해도 순항 중"이라는 평가하지만 2년 간의 대대적인 홍보와 지자체 노력을 생각하면 미흡해 보인다.

우리도 민간플랫폼 시장이 본격화한다. 사회적기업 공감만세의 위기브가 12월 2일부터 서비스를 예고했고 일부 민간과 은행도 뛰어 든다. 2000만명에 이르는 납세자 규모에 일본처럼 기업 기부도 허용되면(우리는 현재 개인만 가능하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민간플랫폼끼리 경쟁하고 민간 플랫폼과 지자체가 협력해 다양한 답례품과 기금사업이 나온다면 고향사랑기부제는 성장의 새로운 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커져 우리도 네이버, 쿠팡, 배민 등이 뛰어드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갑질 횡포 논란이 지자체와 지역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재연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슈&트렌드팀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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