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값만 논하는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 협의체'…불만 폭주

종합적 진단 않고 시멘트 가격 조정 갈등만
"자재 업계만 고통 분담, 인건비 상승 등 복합요인 검토해야"

정부가 건설 공사비 안정화를 위해 운영 중인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 협의체'가 삐걱거리고 있다. 공사비 상승의 다양한 원인을 진단해 해결책을 찾기보다 시멘트 가격 조정을 둘러싼 갈등만 지속되면서 관련 업계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 현장. 김현민 기자

7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4일과 지난 4일 두 차례에 걸쳐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정부와 한국시멘트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회,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 협의체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는 지난달 2일 정부가 발표한 '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2020년 이후 30%가량 오른 공사비를 수요자와 공급자의 자율적인 협의로 안정화하기 위해 열렸다. 문제는 두 번의 회의 모두 시멘트 가격 조정만이 핵심의제로 다뤄졌다는 데 있다.

회의에서 건설 업계는 유연탄 가격 인하로 생산원가가 줄었으니 시멘트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시멘트 업계는 전기료가 10.2% 인상되면서 전기료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으로 늘어나 유연탄 인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친환경 설비투자로 가격 조정은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시멘트 업계는 공사비를 비롯한 분양가 상승은 인건비와 토지비, 금융비용 상승 등을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임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공사비 상승이 시멘트 가격 인상 때문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정부의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 발표 직후 협의체 운영에 대해 "적극 환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협회는 "협의체가 건설산업 활성화 위주의 '핀셋 해법'을 넘어 건설과 연계된 산업 생태계 전반을 진단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포괄적 해법' 등을 논의하길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두 번째 협의체 회의를 마친 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협의체가 시멘트 가격을 논하는 자리라면 앞으로 회의 참여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포괄적 해법에 대한 논의를 기대했으나, 시멘트 가격 조정만 지속 논의하고 있는 협의체에 더 기대할 것이 없는 만큼 향후 회의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레미콘 업계도 협의체 회의가 불편하다. 업계 관계자는 회의에서 "시멘트 가격을 논하는 자리에 우리가 왜 나와야 하느냐"고 발언했다. 건자회는 지난달 23일 레미콘 단체와 제조사에 '시멘트 단가 인하 협상 추진'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 레미콘 업체가 주체가 돼 시멘트 업체들과 단가 인하 협상을 추진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을 내리면 다음은 레미콘 차례다. '제 살을 깎으라'는 건설 업계의 강요는 난센스"라면서 "아파트 분양가에서 레미콘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한데,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 인상이 공사비 급등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건설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에서 시멘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지만, 시멘트를 원료로 하는 레미콘과 모르타르 등을 합치면 10%나 된다"면서 "시멘트 가격 상승이 다른 자재의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멘트 가격은 인하돼야 한다"고 해명했다.

협의체를 주도하고 있는 국토부는 "정부가 민간의 가격결정에 왈가왈부할 수 없으니 건자회와 시멘트 업계, 레미콘 업계 삼자가 모여 협의해달라"고 권고할 뿐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사비 안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자재 업계에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면서 "인건비 상승 등 현장의 복합적 요인에 대해 보다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중기벤처부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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