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CJ대한통운 김포집배점주 ‘모욕’ 노조원 벌금형 확정

택배노조 조합원을 비롯해 약 40명이 참가한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수수료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대리점주를 모욕하는 글을 잇따라 올린 노조원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40대 피해 대리점주는 2021년 8월 노조 조합원 활동으로 생활이 힘들었다는 내용을 유서로 전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택배기사 A씨의 상고심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모욕죄의 성립,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A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21년 5∼7월 택배노조원 등 약 40명이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CJ대한통운 김포 장기집배점주 B씨를 겨냥해 "B의 양배추 같은 까도까도 끝이 없는 비리, 횡령 외 수없는 불법적인 일에 대해 이젠 종지부 찍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개쉐이 하는 짓 딱 야밤도주" 등 B씨를 모욕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씨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채팅방에 올라오자 "질긴놈.. 언제쯤 자빠질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검사는 모욕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의 양배추 같은 까도까도 끝이 없는 비리, 횡령 외 수없는 불법적인 일에 대해 이젠 종지부 찍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에 대해 "글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봐 피해자가 불법비리를 저지르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나 외부적 명예를 저하시킬 만한 표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B씨의 입원 소식을 듣고 A씨가 올린 "질긴놈.. 언제쯤 자빠질까"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노동조합 내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라오자 피고인이 작성한 것인데, 대화의 맥락에 비춰 피해자가 입원한 것에서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더욱 중대한 상황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경멸적 의미를 담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개쉐이 하는 짓 딱 야밤도주"라는 표현에 대해 "피해자를 완곡하게 '개새끼'로 지칭하면서 피해자가 도망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들 메시지가 올려진 채팅방은 약 40명이 참가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참가자 대부분이 택배노조 조합원들이지만 조합원이 아닌 자들도 포함돼 있었고, 결과적으로 피해자 B씨 측에 메시지들이 전달돼 고소에 이른 점 등을 감안할 때 B씨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피해자에 대한 모욕 행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A씨는 재판에서 정당행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 관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이 사건 메시지들을 보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의 메시지 중 일부는 경멸적인 표현을 담고 있을 뿐인 점 등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A씨 측은 항소를 하면서 검사가 공소장에 피해자 B씨가 숨진 사실을 기재한 것이 '공소장일본주의'에 반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일본주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에는 법원에 공소장만을 제출해야 하며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는 물론 법원에 예단을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도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해 "공소장일본주의의 위배 여부는 공소사실로 기재된 범죄의 유형과 내용 등에 비춰 볼 때에 공소장에 첨부 또는 인용된 서류 기타 물건의 내용, 그리고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이외에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이 법관 또는 배심원에게 예단을 생기게 해 법관 또는 배심원이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당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러한 기준에 비춰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 공소제기라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공소장 기재의 방식에 관해 피고인 측으로부터 아무런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고 법원 역시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그대로 공판절차를 진행한 결과 증거조사절차가 마무리돼 법관의 심증형성이 이뤄진 단계에서는 소송절차의 동적 안정성 및 소송경제의 이념 등에 비춰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해 이미 진행된 소송절차의 효력을 다툴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변호인이 당심(2심)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새로 했음은 기록상 분명하므로 원심의 증거조사절차가 마무리된 다음에 이뤄진 위와 같은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A씨 측은 애초 1심 재판 때 검사가 공소장에 B씨가 숨진 사실을 기재한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다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2심에서 새롭게 '법리오해' 주장을 들고 나왔는데, 대법원 판례에 따를 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또 재판부는 "한편,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공연히 피해자를 모욕했다는 것이고, 공소장에 포함된 피해자가 (숨졌다는) 내용의 기재는 이 사건 범행의 중대성, 피해자에게 미친 영향, 사건의 정황이나 경과 등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그 기재 자체로 법원에 예단을 생기게 해 법원이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12년간 택배업을 해 온 B씨는 "밤을 새워가며 일하다 대리점을 차렸지만 처음 겪어본 노조원의 불법 태업, 업무방해, 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통보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며 "우울증이 극에 달해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너희들(노조)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길 바란다"고 적은 유서를 남기고 2021년 8월 30일 숨졌다.

B씨가 숨진 뒤 유족은 전국택배노조 김포지회 노조원 13명을 가해자로 지목해 고소했다.

택배노조는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초심으로 돌아가 내부 혁신을 과감하게 단행하겠다"며 폭언이나 집단 괴롭힘에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다른 택배노조원 1명은 2022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다른 1명은 인천지법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사회부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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