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시켜주지 마세요'…Z세대 사이 유행이라는 '의도적 언보싱'[뉴스속 용어]

중간 관리직으로의 승진 거부·기피 현상
개인의 안정·워라밸·정년 보장 등 연관
임금 협상에서 승진 거부권 요구하기도

영국 Z세대(1990년 후반~2010년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승진을 회피하고 중간관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바람이 불고 있다. 의도적 언보싱이란 젊은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일부러 중간 관리직으로의 승진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가 지난달 영국 Z세대를 중심으로 실시한 승진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중간 관리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69%는 ‘중간 관리자는 스트레스는 높지만, 보상은 낮다'라고 인식했다. 심지어 응답자의 16%는 '중간 관리자를 완전히 피하고 싶다'고 답했다.

[사진출처=AI 이미지]

반면 이들은 직장 내 성공보다 개인의 성장에 관심이 높았다. ‘부하 직원을 관리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성장과 기술 축적에 시간 쓰는 것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72%에 달했다. 부하 직원 관리에 대한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일하길 원한다는 이야기다. 로버트 월터스의 디렉터 루시 비셋은 “Z세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덜하다”면서 “중간 관리자 역할 기피는 나중에 고용주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의도적 언보싱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는 승진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취업플랫폼 잡코리아가 M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4.8%가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럽다(43.6%)'란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임원 승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20.0%), 임원은 워라밸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13.3%), 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11.1%), 회사 생활을 오래 하고 싶지 않아서(9.8%) 순이었다. 이는 MZ세대가 고액 연봉과 승진 욕구보단 길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파업 찬반투표 개표 중인 HD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출처=연합뉴스]

사실 의도적 언보싱은 최근 불거진 현상은 아니다. 국내 노동계에서 승진 거부권 도입을 요구한 건 8년 전인 2016년 현대자동차 임금협상 때부터였다. 당시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과장이 되면 조합원 자격이 없어지고 연봉제를 적용받는 데다, 인사고과에 따른 압박이 심해 과장으로 승진을 원하지 않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했다. 비조합원 직급인 과장으로의 승진을 포기하고 평생 조합원으로 남아 정년 보장 등 여러 혜택을 누리겠다는 취지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에 승진 거부권을 넣었다. HD현대중공업의 생산직은 7~4급(14년)-기원(6년)-기장(6년)-기감(6년)-기정(기한 없음) 8단계로, 사무직은 매니저(4년)-선임 매니저(4년)-책임 매니저(기한 없음) 3단계로 각각 구성된다. 생산직은 기감, 사무직은 책임 이상 승진할 경우 노조에서 자동 탈퇴하게 되는데, 이때 승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이슈인 정년 연장처럼 승진 거부에는 과거보다 생애 주기가 길어진 탓에 개인의 안정과 워라밸, 노후 공포와 정년 연장 등 여러 요소가 혼합돼 나타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정치부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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