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스페이스X도 실패했었다‥韓 스타트업 용기있는 발사연기

'슈퍼헤비' 놀라운 지구 귀환도 실패에서 배운 것
페리지, 연이은 악전고투 속 결국 해상발사 연기 선택
신동윤 대표 "우려 알지만 배운 것 있어‥내년에 꼭 성공"

스페이스X의 팔콘헤비 로켓이 발사대에 세워져 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지난 17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우주항공청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주목한 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였다. 스페이스X는 최근 고층 빌딩 크기의 ‘슈퍼헤비’ 로켓이 하늘에서 떨어지다 스스로 자세를 제어해 거대한 로봇 팔에 잡히며 안착하는데 성공했는데, 국감에 참석한 의원들에겐 그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첫 질의에 나선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자극받은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10년 안에 달에 가겠다고 선언하는 역사적인 연설 장면을 보여주며 질의를 시작했다. 이어 여러 의원들이 우리 우주기술의 수준과 재활용 발사체 추격 가능성 여부 등을 집중 질의했다.

◇희망을 좌절로 만든 ‘슈퍼헤비’=앞서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지난 9월 우주항공청 출범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스페이스X와 비교해 절반의 비용으로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한 달여 만에 윤 청장의 ‘청사진’은 스페이스X의 놀라운 성과 앞에 ‘공수표’로 전락할 처지가 됐다. 스타십은 1회당 발사 비용을 200만~300만달러(약 27억~41억원)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심지어 국내는 아직 재활용 발사체도 없다.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은 ‘경량 재사용 발사체는 사업성도 없고 2030년대 중반이 되면 효용성이 없을 거란 평가도 있던데, 재활용 발사체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12월에 구체적인 전략을 발표하겠다"며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면 우주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 격차는 이런 희망을 무너뜨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로켓이 공중에서 떨어지다 스스로 멈춰 서서 거대한 젓가락에 잡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달 탐사를 위한 로켓 개발을 위한 지식재산권을 두고 정부 출연연구소와 기업, 정부 당국이 고민을 거듭하는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 대비됐다.

의원들의 질타와 우려가 있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부분이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많은 이가 스페이스X의 무모한 도전을 조롱했다는 점이다. 스페이스X도 처음부터 발사에 성공했을 리 없다. 현재 거의 매번 발사에 성공하는 팰컨 9과 팰컨 헤비, 스타십과 슈퍼헤비도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발전했다.

스타십의 경우 프로토타입부터 여러 번의 폭발을 경험했다. 스타십은 비행에 성공하고 착륙한 뒤 돌연 폭발해 지켜보던 이들을 실망하게 하곤 했다.

지난해 스타십과 슈퍼헤비가 결합해 시작된 실험도 4차례의 실패가 있었다. 물론 실패가 이어질수록 발전도 있었다. 실패는 발전의 어머니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였다.

머스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5년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실패는 하나의 선택지이다. 만약 실패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언급대로 일까.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실패를 밑거름 삼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머스크에게 실패가 없이 단번에 성공한 슈퍼헤비의 사례는 오히려 어색하다.

우리 우주개발의 역사에서도 실패는 항상 있었다. 1993년 과학로켓 1호 발사가 실패했고 2009년과 2010년에는 나로호 1차, 2차 발사가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나로호는 3차에서야 겨우 성공했다.

박창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차세대발사체개발사업단장은 지난 7월 2024년 과학기자대회 ‘우주청, 재사용 발사체 개발 필요할까’ 세션에서 "스페이스X도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시험 발사를 8전 9기만에 성공했다"면서 "10번은 기회를 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시험발사체 '블루 웨일 0.4'이 해상 발사대에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페리지에어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우주 스타트업의 용기있는 후퇴= 스페이스X 대성공의 여파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18일. 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예정했던 준궤도 시험발사를 내년 1분기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신동윤 페리지 대표는 어려 난제 속에 발사를 위한 도전을 계속했지만 잠시 쉬어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한국과학기술원 항공우주공학과 대학원생이기도 한 신 대표는 아직은 발사 버튼을 누를 때가 아니라고 했다.

페리지는 올해 상반기 자체 개발한 준궤도 시험발사체 ‘BW0.4(Blue Whale 0.4)’를 제주도 해상에 위치한 자체 해상발사플랫폼(MLP·Marine Launch Platform)에서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발사 시점을 미뤄오다 10월까지 연기한 바 있다.

회사 측은 최종 리허설 단계에서 보완 사항이 발견되어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고 설명했다. 해상발사를 준비하며 발사체를 5개월 이상 바다에 노출 시킨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태풍이 연이어 발생하며 RBF(Remove Before Flight·비행 전 제거) 핀 체결 부위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연결하고 해제하는 과정에서 점화 관련 부품에 접촉 불량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심수연 페리지 부사장은 "바다에서 발사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내에는 아직 민간 기업이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는 지상 발사장이 없다.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는 정부 출연연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용이다. 17일 열린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이런 문제로 또 다른 국내 발사체 기업인 이노스페이스는 해외에서 발사를 시도하고 있다.

결국 하드웨어와 실제 발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발사계획을 연기한다는 게 회사 측의 입장이다. 발사가 지연되며 직원들의 피로가 누적된 것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 발사 후 예상했던 기업공개(IPO)도 미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도전은 미뤄졌지만 성과도 있었다.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우주기업으로는 처음 페리지의 우주발사체용 극저온 추진제 엔진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인정했다.

신동윤 대표는 "계획한 발사 일정 내에 진행하게 되지 못해 매우 아쉽지만 해상발사 운용 능력과 해상에서의 다양한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적 자산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절치부심해서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산업IT부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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