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 환수해놓고 친일파 후손에 팔아버린 정부'

환수한 친일파 재산, 보훈부가 후손에 팔아
최소 12건 수의계약 처음으로 확인돼
고흥겸·신우선 후손, 환수 토지 다시 매입

2005년 제정된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에 환수된 친일파 재산 일부가 수의계약 형태로 친일파 후손들에게 도로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일 MBC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조사 결과, 국가가 친일파들의 행적을 조사한 뒤 이들이 일본 강점기에 축적한 땅을 환수한 이후 최소 12건은 수의 계약 형태로 친일파 후손들에게 다시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2005년 제정된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에 환수된 친일파 재산 일부가 수의계약 형태로 친일파 후손들에게 도로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진출처=MBC 뉴스]

이인영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훈부에서 위탁받은 전국 1418개 필지 가운데 575개 필지가 매각됐고, 그중 341개 필지가 수의계약으로 팔려나갔다. 이인영 의원실은 수의계약으로 팔린 341개 필지의 매수자를 검토한 결과, 적어도 12개 필지(1만3천여㎡)를 친일파 7명의 후손이 사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친일재산귀속법 제정 이후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 168명의 부정한 재산을 확인하고 이를 국가에 귀속시켰는데, 정작 이 재산을 도로 후손들이 매수해간 것이다.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되찾아간 이들은 이완용에 뒤지지 않는 친일 행위자들의 후손이다.

정미칠적 고영희의 손자인 고흥겸은 일제하에서 일본 농상무성 기사를 지내고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으며 조부와 부친의 백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는 고흥겸의 충남 예산 땅 24필지를 환수했는데, 고영희 후손은 이 중 3필지를 국가로부터 수의계약으로 사들였다.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수부 담임(접수 담당) 위원을 지내고 일제하 공주·아산군수 등을 지낸 신우선의 경기도 고양시 땅 역시 국가에 귀속됐으나 후손이 일부를 도로 매입했다. 그밖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홍종철, 장응상과 이선호 등도 비슷한 경우다.

토지나 부지 내 건물 등 이유로 수의계약…제도 허점 노려

친일파 후손들이 이렇게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도로 사들일 수 있었던 건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은 인접한 토지나 부지 내 건물 등을 이유로 수의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따라 국유지 내 건물 또는 인접 부지를 소유한 사람의 경우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어서다.

친일재산귀속법 제정 이후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 168명의 부정한 재산을 확인하고 이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사진은 친일파의 가옥. [사진=아시아경제]

그러나 이런 거래는 국유재산 처분 시 공공가치와 활용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 국유재산법 6조에도 어긋난다. 나아가 "민족 행위자가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삼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친일재산귀속법 1조에도 반한다.

환수 당시 후손들이 쟁송을 거듭하며 반발했던 만큼, 귀속재산을 다시 사들일 가능성이 컸는데도 이를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 확인된 계약 내역은 일부 직계 후손의 명의를 의원실이 하나하나 대조한 끝에 밝혀낸 것이어서 수의계약으로 체결된 341건 가운데 추가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높아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슈&트렌드팀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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