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이기자
<i>"늘 '저도 시켜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 없을까요?'라고 말했어요. 여성이 맡는 정형화된 업무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i>
최근 전북 전주시 전북특별자치도청에서 만난 이오숙 전북소방본부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전형이었다. 그는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로 호우, 지진, 화재 등과 같은 재난은 물론, 촌각을 다투는 긴급 구조 상황에서 활약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소방 76년 역사상 첫 여성 소방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도,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어디서든 잘하려고 노력했던 적극성과 인내심이 있었다.
거칠고 험한 남성 중심의 업무 환경에서 그의 섬세함과 소통 능력은 강점이 됐다. 후배, 동료로서 선배들과 교류하거나 다른 기관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늘 직접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 덕에 전국 소방서를 거쳐 지난해 소방청 대변인의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 5월 본부장에 취임하고 난 후 이 본부장은 4개월간 전북의 크고 작은 재해에 대응하는 데 매진했다. 지난 6월 부안 지진, 김제·익산 등에서 발생한 화재와 7월 집중호우로 인한 하천 범람에도 신속하게 대응해야 했다. 소방본부 내에서도 긴급 상황에 빠르게 대처한다는 평이 자자하다.
-소방 분야는 여성이 도전하기 쉽지 않은 데다, 여성 근무 인력 자체가 적다. 소방관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학창시절 의용소방대장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가 대원분들을 모아 산불 현장으로 출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제복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로망도 있었다. 행정학도로서 공무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대학교 4학년 당시 선배였던 남편이 권유로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다. 앞으로 소방은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직업이 될 것이니 잘 준비해서 꼭 합격하라고 말씀을 해주신 교수님 덕에 용기를 갖고 도전하게 됐다.
-소방관이 된 이후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대전 첫 여성소방파출소장, 영남권 첫 여성소방서장 등 '최초'라는 타이틀로 커리어가 채워져 있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내가 임용된 1988년 당시에는 소방서마다 여성 소방관이 많아야 한두 명 정도 근무할 정도로 소수였다. 특히 대부분 민원실, 급여 지급, 화재예방 홍보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업무로 인정받아 심사로 승진하는 것이 어려웠다. 감사하게도 두 번의 승진시험에 합격해 동기나 선배들보다 승진을 앞당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왔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열악한 상황에 실망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다.
어쩌면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성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갈 때마다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통과하면서, 때로는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못 버티면 후배들에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오늘이 있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었나.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 속에서 여성 소방관은 특정 업무만 담당하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업무를 성과로 인정받고, 중요하고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버거울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늘 스스로에게 어떤 업무든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며 소방조직과 관련한 연구도 병행했다.
△행정학을 전공하면서 졸업 후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하기 전에 소방관이 되고, 또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해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이 키우느라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살았다.
그러다 대전북부소방서 궁동119안전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시어머님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장례 절차를 마치고 며칠 뒤 남편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면서, 지금도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시작하라고 제안을 했다. 이후 준비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소방관으로서 조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조직신뢰도와 조직성과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다. 그동안의 소방관 근무 경험을 토대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이 직무만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 연구를 했고, 논문을 통해 제안했던 사항 중 일부는 소방정책에 반영됐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
△소방위 승진시험에 한 번 떨어졌을 때였다. 선발인원이 워낙 적은 데다 시험성적에 근무경력, 근무성적까지 반영해 합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 번에 합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두세 번 이상 만에 합격하거나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승진한 지 2년여밖에 안 돼 근무경력, 근무성적 모두 낮고 준비기간도 짧아 기대하지 않고, 경험 삼아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응시했었다. 그런데 결과를 살펴보니 반 문제만 더 맞혔으면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후회됐다. 이후 1년 동안 퇴근한 뒤에 바로 독서실로 달려가 밤 12시 넘어 귀가해 겨우 잠들었다.
-지금껏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가.
△소방방재청에서 구급 업무를 맡게 됐을 때 국민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119 구급 서비스 전반에 대해 법령을 재개정하고, 특히 현장에서 응급처치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라인(119 구급대원 현장 응급처치 표준 지침)을 처음 만들었다. 각 대학병원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참여해 실제 구급대원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환자별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의 세부 기준을 수립했다.
-소방청 대변인 출신답게, 소통 능력도 강점으로 활용한 것 같다.
△그렇다. 궁동119안전센터장 당시 센터가 대학가 상가지역 안쪽에 있어서 화재 출동을 하려면 도로 양쪽에 빼곡히 주차된 차들로 출동이 힘들었다. 우리는 출동로를 확보해야 하니까 주정차단속을 강화하고, 업주분들은 단속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시며 불만이 쌓이다 보니 문제 해결은 되지 않고 업주분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고민 끝에 현장에 나가 도로 폭을 측정한 다음 주차차량들 옆으로 소방차를 통행해 보니 한쪽 면으로만 주차하면 출동에 지장이 없겠다는 답을 찾았다. 근처 식당에서 출동로의 업주분들을 모시고 오찬 간담회를 하면서 소방통로를 확보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을 설명해 드리고, 그분들 의견도 들으면서 건물 건너편 한쪽에만 주차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날 이후로는 소방차가 출동할 때마다 업주분들이 먼저 나와 소방차 출동에 지장이 없는지 살펴봐 주어 원활하게 출동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씩만 이해하다 보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했다.
-인생의 가치관이나 원칙이 있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 피할 수 없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의 멘토로 삼은 사람이 있었나.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남편이다.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하게 조언해 주고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조언자이자, 후원자다.
-도전을 앞둔 여성 동료, 뒤따르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려움은 성공의 반대가 아닌 성장의 일부다. 도전은 우리를 강하게,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용기를 내어 첫발을 내딛고 혹여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당신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는 희망의 등불이다. 우리가 함께 성장하며 서로에게 힘이 돼준다면, 더 큰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지 말고 여성, 남성을 떠나 한 사람의 소방관으로서 자신을 믿고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있나.
△지금의 목표는 본부장으로서 동료들과 다양하게 소통하고, 도내 관련 부서는 물론 지역사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해 도민들의 안전을 지켜 드리는 것이다. 또 성장하는 전북소방, 신뢰받는 전북소방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3년여의 공직기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로 잘 마무리하고 싶다. 공직 경험을 토대로 후배 양성에 도움을 주거나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오숙 본부장은,
1988년 대전 소방사 공채에 임용돼 36년간 소방업에서 재직했다. 대전 궁동파출소장, 대구 북부소방서장 등 요직을 거쳐 2020년 소방청 코로나19긴급대응과장을 맡아 활약했다. 지난해엔 소방청 대변인으로 약 1년간 근무한 후 올해 5월 전북소방본부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