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살인 더위'에 숨이 턱턱…폭염에도 쉬지 못하는 야외 노동자들

최근 두 달간 온열질환자 1195명
행안부, 폭염 경보 수준 '심각' 발령

"딱히 이겨내는 법은 없어요. 얼른 하고 집 가서 쉬어야지."

지난 3일 오후 3시께 서울 마포구 한 사거리에서 카트에 짐을 싣던 택배기사 최모씨(38)는 이마에 흐르는 땀줄기를 연신 닦았다. 인근 아파트 단지로 배달하기 위한 택배 박스를 카트에 넘치게 실었지만 바닥엔 아직 작업하지 못한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최씨가 허리를 굽히고 작업하던 아스팔트 바닥은 금세 땀방울로 젖었다.

최씨는 "오늘 오전 9시부터 창고에서 물건 싣고 낮 12시부터 배달을 시작했다. 집에서 물을 얼려서 가져왔는데,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다 녹고 미지근해졌다"며 "더위를 피할 순 없으니 얼른 일을 끝내고 집에 가서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야외 노동자들이 도로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이서희 기자]

이날 서울·경기를 비롯한 전국엔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치솟은 가운데 서울의 낮 최고 기온도 33도까지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낮에 뙤약볕에서 일해야 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낮 12시께 서울 용산구 한 카페 앞에서 도로포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현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쉴새 없이 부채질했다. 나무 밑에 의자를 두고 '간이 휴게실'처럼 사용하고 있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 더위'를 막기엔 부족해 보였다. 작업하다 지친 노동자들은 이곳 그늘로 와 찬물을 들이켜며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작업을 재개했다.

현장에서 만난 임모씨(67)는 "오전 8시에 현장에 모여 작업 내용과 폭염 관련 주의사항을 듣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건너편 건물 안에 에어컨이 딸린 작은 휴게실이 하나 있긴 한데, 일도 많고 작업도 바빠서 거기까지 가서 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 이모씨(62)는 "본사에서는 폭염 시에 45분 일하고 15분 쉬라고 한다. 얼음물도 챙겨주고 있다"며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지침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지난 5월20일부터 7월31일까지 전국에서 사망자 5명을 포함해 온열질환자 1195명이 발생했다. 행안부는 심각해지는 폭염 상황을 대비해 지난달 31일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가동하고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상향했다. 폭염 위기 경보 심각 단계는 전국 40% 지역에서 일 최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3일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서울 중구에서 서울시 공무원이 따릉이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이서희 기자]

따릉이, 전동 킥보드 등을 수거하는 노동자들도 폭염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오후 4시께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 속에서 양모씨(45)는 시민들이 두고 간 따릉이를 수거 트럭에 옮겨 담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햇빛 가리개와 토시로 더위를 막아보려 애썼지만 미처 가리지 못한 양씨의 눈 밑과 콧등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양씨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몇 시간 일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절어 옷도 잘 벗어지지 않는다"며 "그래도 일을 안 할 순 없으니 가끔 물 마시고 휴식을 취하면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폭염이 계속되자 행안부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야외활동이나 작업을 최소화하고 현기증, 메스꺼움, 두통 등의 증세가 있으면 무더위 쉼터 등 시원한 장소를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날씨가 매우 무더우니 야외 노동자들은 수분과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달라"라며 "혹서기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사회부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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