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국내 증시의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장바구니에 화장품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력주가 대거 추가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의 상승 사이클, 그리고 최근 뜨거운 K뷰티 열기에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달 들어 126건의 대량보유 종목(지분율 5% 이상)의 지분 변동내역을 공시했다. 2분기에 대량보유 종목으로 신규 편입된 상장사가 19개에 달했다. 이 중 에이피알(11.2%)의 지분율이 가장 높았다. 삼화전기(10.06%)와 HD현대마린솔루션(6.23%), 삼화콘덴서(6.21%), 에스티아이(6.09%) 등이 뒤를 이었다. 대량보유 종목은 1분기 275개에서 2분기 283개로 8개 증가했다.
지분율 기준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담은 에이피알은 지난 2월 상장한 뷰티테크 기업이다. 5달이 흐른 현재 국민연금은 에이피알의 '주요 주주(지분율 10% 이상 혹은 사실상의 지배주주)'로 등극했다. 1분기에는 화장품을 비롯한 K뷰티 기업의 비중을 줄였던 국민연금은 2분기 들어 다시 K뷰티 열풍에 탑승했다. 중소 화장품 브랜드인 토니모리(5.03%)와 피부미용 업체인 원텍(5.01%)도 2분기에 신규 편입한 대량보유 종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총 48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반도체 산업을 떠받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 이른바 '소부장' 기업들도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의 '뉴페이스'로 등장했다. 에스티아이(6.09%)와 테크윙(5.16%), 주성엔지니어링(5.13%), 아모텍(5.09%), 디아이(5.06%), 피에스케이홀딩스(5.06%) 등 6개 기업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경쟁이 벌어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전력주도 바구니에 담겼다. 삼화전기(10.06%)와 삼화콘덴서(6.21%), 대한전선(5.01%)이다. 대한전선의 경우 국내 '전선 4사'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신규 편입으로 등장한 기업들은 대부분 현재 호황기를 맞이했거나, 맞이하고 있는 산업에 속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바로 '패션주'이다. 국민연금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유명한 영원무역홀딩스(5.01%)와 핸드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제이에스코퍼레이션(5.04%)을 각각 대량보유 종목으로 신규 편입했다. 섬유·의복 업종의 경우 최근 1년 기준 모든 업종을 통틀어 가장 주가 상승률이 부진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국내 패션기업들은 수출로 잘 나가는 다른 소비재와 달리 실적 부진을 계속 겪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은 앞으로의 업황 반등 가능성에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존 대량보유 종목 중에서는 방산주의 비중을 축소한 것이 눈에 띈다. 2분기 중 방산 대장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을 8.58%에서 7.56%로 1.02%포인트 줄였다. 다른 방산 기업인 LIG넥스원의 지분도 12.32%에서 10%로, 풍산은 11.43%에서 9.95%로 각각 감소했다. 방산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1분기와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