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부서지기 직전의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리는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하며 화제다. 7일 한 커뮤니티에 '가끔 목격되는 호러카'라는 제목으로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이 차를)어떤 사람이 모는지 상상조차 안 된다"며 "휴대전화 번호가 016, 017일 것 같다”고 글을 남겼다. A씨가 공유한 차량의 사진은 대우자동차가 1990년에 출시한 '에스페로'로 추정된다. 에스페로는 1990~1997년 동안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했던 모델로 당시 품질이 좋고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속 차량은 폐차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곳곳에 손상된 흔적이 역력하다. 창문과 전조등은 깨져있고 손잡이와 창틀은 청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다. 차체에는 반복해서 긁힌 흔적과 찌그러진 흔적이 가득하지만, 자동차 수리를 받지 않고 테이프에만 의존하는 상태로 보인다. 엔진 등 내부 장치에 대한 걱정이 잇따르는 가운데 도로에서 종종 봤다는 목격담이 이어져 사람들은 이를 '호러카'라고 부르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앞선 사례의 차량은 상태가 좋지 못해 '호러카'라 불리지만, 해당 차와 같은 올드 카 혹은 클래식 카 시장은 마니아층이 뚜렷한 시장이다. 무엇보다 이런 차량은 길가에서도 종종 눈에 띄지만, 광고와 뮤직비디오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화면 속에서 속도감을 나타낼 때나 공간 연출을 위한 좋은 소품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올드카를 타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 올드카는 '옛날 아저씨들' 사이에서 향수를 공유하는 수집 문화였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과거의 문화를 재해석하는 '뉴트로(Newtro)'로 올드카를 인식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 갤로퍼와 1세대 그랜저(일명 각 그랜저), 포니2 픽업은 국산 올드카 마니아 사이에선 없어서 못사는 차종이다. 우선 갤로퍼는 넓은 실내공간 덕분에 캠핑족들에게 인기다. 출시 당시 갤로퍼는 6인승이었지만 7인승 허가를 고려할 정도로 넓은 실내가 큰 장점이었다. 요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는 보기 힘든 프레임보디를 사용했다는 점도 인기 요소다. 프레임 보디는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차체를 올린 형태다. 차체와 프레임이 따로 분리되기 때문에 복원 작업도 훨씬 수월하다.
갤로퍼는 현대차의 첫 SUV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도 있다. 갤로퍼는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자동차 분야를 맡고 수행한 첫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전신) 시절 정 명예회장은 정주영 초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륜구동 SUV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서울 올림픽과 맞물려 국민들의 레저활동이 늘면서 사륜구동 SU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출시 첫해인 1991년 갤로퍼는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다음 해에는 국내 사륜구동 SUV 시장 점유율 52%를 차지했다.
일명 '각 그랜저'로 불리는 1세대 그랜저도 국산 올드카 시장 베스트셀러다. 1986년에 출시된 1세대 그랜저는 가장 비싼 국산 고급 차였다. 1세대 그랜저 3.0 출시 가격은 2890만원. 1987년 당시 반포 주공아파트 18평 매매가격이 3400만원대였다. 차 한 대가 서울 시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1세대 그랜저는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세단, 성공의 상징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올드카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지금도 관리가 잘된 '각 그랜저'는 올드카 시장에 1000만원 정도 가격으로 매물이 나온다. 직선이 강조된 깔끔하고 중후한 디자인이 높게 평가받는다. 지난해 말 출시된 7세대 신형 그랜저도 '각 그랜저'의 디자인을 계승했다. 1세대 그랜저 디자인에 향수를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2023년 클래식카 플랫폼 스타트업 옛차가 추산한 국내 올드카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수준이다. 국내 중고차 시장(39조원)의 약 1.3%로 아직은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자동차 제조 선진국에서는 이미 올드카 시장이 분리돼 있고, 경매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환경 관련 규제 정비도 일찌감치 마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