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정부가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철회 등을 발표한 가운데 사직 효력 발생 시기와 퇴직금 규모 등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제기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에서 "전공의 여러분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병원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사직서를 수리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복귀 기한과 수리 시점 등에 대한 정부 지침에 따라 사직서를 수리해 나갈 예정"이라며 "사직하는 전공의가 많다면 하반기에 전공의를 추가 모집하는 등 대비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정부가 사직서 수리를 허용했으니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사직서는 수리하는 방향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사직 효력은 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한 이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민법상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더라도 제출한 지 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정부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리며 전공의들이 지난 2월20일께 제출한 사직서의 효력은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김광훈 노무사는 "사직서가 수리돼야 효력이 발생하는 사직의 경우 수리 시점에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며 "2월20일께 사직서 수리가 정부 명령에 따라 미뤄졌기에 6월이 사직 효력 발생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특수한 상황인 만큼 다르게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동찬 변호사(더프렌즈 법률사무소)도 "병원이 6월 중 사직서를 수리한다면 수리 시점인 6월에 사직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며 "퇴직금도 사직일 이후 14일 이내에 지급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실제 근무 기준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경우 병원은 당장 퇴직금 마련 준비에 착수해야 할 수도 있다.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법대로 한다면 사직서 제출 이후 근무하지 않았으니 한 달째인 3월20일께 사직 효력이 발생된 것으로 처리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사직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니 병원들은 시급히 퇴직금 지급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3월 효력 발생 이후 14일이 지나 지급됐다 하더라도 법적 책임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전공의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병원의 경우 지급 시점도 수리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법은 퇴직금은 사직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전공의의 퇴직금 규모는 계속근로기간 1년당 600만원 수준이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해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인턴과 레지던트의 평균 연봉은 보건복지부가 2022년 공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각각 약 6900만원과 7300만원 수준이다.
다만 퇴직금 규모 등을 두고도 법적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계약이 3월 시작인 전공의들이 2월20일께 사직서를 제출해 퇴직금 지급 기준인 만 1년을 채 채우지 못했지만, 사직 효력이 3월 이후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광훈 노무사는 "무단결근도 근로가 끊긴 상태로 보진 않는다. 이 기간에 근속 기간이 유지되다 보니 법적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찬 변호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의해 임금이 지급하지 않겠다는 주장도 가능하고, 실제 사직서 수리된 게 6월이니 근로자성이 있어 임금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면서도 "내부 규정과 계약에 따라 달라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병원계도 퇴직금 산정을 두고 사직 효력 발생 시기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발표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를 사직 효력 발생 시점으로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이후 정부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고려하는 전공의의 수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이날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퇴직금은 준비가 되셨겠죠"라며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전날 전공의 내부 메신저를 통해서도 복귀하지 않겠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위원장은 "저도 마찬가지지만 애초에 다들 사직서가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나"라며 "사직서 쓰던 그 마음 저는 아직 생생하다.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으로 지금까지 유보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잡아가도 괜찮다. 지금까지 언제나 어느 순간에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부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그런 한 해를 만들어 보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