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갸루~"라고 말하면서 손가락 브이를 뒤집어서 내미는 포즈. '갸루피스' 또는 '갸루포즈'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차례 유행했는데요. 저도 일본인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 요즘 한국에서 다시 유행한다며 곧잘 보여주곤 하는데, 일본인 친구들은 반대로 한국에서 예전에 유행하던 손가락 하트나 볼 하트 포즈를 하더라고요. 두 나라 포즈가 서로 수출되고 있었는데요.
이 포즈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스티커사진'으로 불리던 '프리쿠라' 사진 포즈들이죠. Y2K 감성이 다시 주목받는 요즘, 이번주는 프리쿠라의 탄생 배경과 갸루피스 등 일본에서 유행하는 각종 포즈에 대해 소개합니다.
프리쿠라의 유래는 '프린트 구락부(클럽의 일본식 표기)'에서 왔습니다. 1995년 일본 게임회사 아틀라스가 출시한 즉석 사진 판매기 브랜드 이름이죠. 이 판매기는 내장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출력해주는 스티커사진기의 원형입니다. 이후 아틀라스가 일본 기업 세가에 인수되면서 세가는 '프린트 구락부'를 스티커사진기의 정식 명칭으로 등록하게 되는데요.
원래 놀이공원을 중심으로 설치됐는데, 점점 인기를 끌면서 나중에는 스탬프나 펜 태블릿을 탑재해 사진을 꾸미는 버전이 추가됐고, 점차 인기를 끌게 되죠. 2000년대 초반 스티커사진이 대유행했기 때문에 같은 기능을 가지는 다른 제품도 모두 프린트 구락부(일본어 발음 쿠라부)의 약자, 프리쿠라로 통칭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여전히 스티커사진은 프리쿠라로 불리고 있는데요. 인생네컷 등 요즘 우리나라 즉석 사진은 보정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반면, 2배씩 커지는 눈과 하얀 피부를 강조하는 보정은 여전해 예전 스티커사진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프리쿠라 포즈는 언제부터 생겨났고, 어떤 종류가 유행하고 있을까요? NHK에서 사진을 찍을 때 취하는 포즈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먼저 행인 59명에게 사진 찍을 때 어떤 포즈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47명이 손가락 두 개를 V자로 펴는 '피스사인'을 했습니다.
원래 이 피스 사인은 2차세계대전 나치 독일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빅토리(Victory)'의 약자를 뜻했고, 연합군들의 유대감을 높이는 표시였다고 하죠. 이후 이 사인은 1960년대 미국 반전운동과 히피문화 속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피스사인'으로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일본에 전파된 것은 1970년 전후 미국에 카메라 광고를 촬영하러 나간 이노우에 준이라는 배우 덕분이라고 하네요. 당시 미국 거리를 걸을 때 상대방이 '피스'라고 하면서 포즈를 취했고, 이것을 차용해 광고에서 피스 사인을 내밀면서 찍은 것이 일본에 유행하게 됩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사진을 찍을 때 피스사인을 하는 서양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 특정 국가에선 이것이 상대를 모욕하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어깨동무나 그냥 미소를 짓는 정도에서 끝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일본 특유의 '갸루문화'가 유행하게 되면서 당시 유행했던 브이를 뒤집은 형태의 '갸류피스'도 유행하게 되는데요. 특히 최근 레트로, Y2K 감성이 재조명되면서 당시 갸루문화도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갸루피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아이돌 멤버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도입됐는데요. 이 밖에도 제 주변에서 쓰는 사람들은 잘 못 봤지만 갸루 특유의 네일아트를 잘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쫙 펴 얼굴을 수줍게 가리는 포즈, 중지와 약지를 접어 만드는 '저스티스 포즈' 등도 최근 일본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하네요.
반대로 한국 포즈도 역수출됐는데요.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 한 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손가락 하트입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포즈인데, 일본에서는 '유비 하트(指ハ?ト)'로 불립니다. 또 볼 한쪽에만 손으로 크게 하트를 만드는 포즈도 한국식 포즈로 뜨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나라는 요즘 프리쿠라와 달리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인생네컷이 더 유행이죠. 한국식 포즈가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이 인생네컷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프리쿠라 기계 중에 '한국식'이라며 4컷짜리에 보정을 덜 하는 기계들이 요즘 나오기는 했는데, 여전히 프리쿠라 특유의 느낌이 남아있어서 인생네컷이랑 같다고 보기는 어렵더라고요. 실제로 한국 사진 기계 '포토이즘'이 이미 일본에 진출했는데, 방문객이 많아 일본에 30호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여하튼 사진 포즈 하나로 문화 교류가 이뤄지다니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