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아기자
지난 12일 오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4번 출구 인근. 곳곳에서 ‘차 조심하라’는 고성이 들렸다. 인도에 펼쳐진 간이 테이블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의 등 뒤로는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차량은 행인들과 테이블을 피하느라 중앙선을 넘어가며 아찔한 곡예 운전을 이어갔다. 시민 한지선씨(21)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지나다니시던데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아영씨(21)도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 찾아왔는데 이렇게 위험한 환경일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종로3가역 일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포장마차 문화’로 유명해지면서 이곳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를 가득 메운 간이 테이블로 통행로가 사라지면서 행인들이 도로를 오가며 걸어야 하는 아찔한 상황도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 포장마차 거리는 2010년 서울시 정책에 따라 종로 대로변에 있던 노점들이 옮겨져 형성되기 시작했다. 포장마차 한 곳당 테이블 4개까지 설치를 허용하는 등의 합의를 통해 시에서 영업을 허용해줬다. 그러나 포장마차를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인근 식당들도 하나둘 외부에 간이 테이블을 설치하기 시작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곳 일대 인도 대부분이 포장마차와 식당의 간이 테이블들에 점령당하면서 사람이 다닐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은 이들 상당수가 인도가 아닌 차도로 나와 걸으면서 하루하루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종로구청에 따르면 야외테이블로 인한 교통 불편 민원이 온라인의 경우 올해 1~3월 22건, 4월 75건, 5월 1~10일까지 24건 접수됐으며 전화로도 하루 평균 3건 정도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종로구도 포장마차 거리의 안전한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5~6월간 집중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식당은 영업공간으로 신고하지 않은 옥상, 테라스, 평상, 야장 테이블 등에서의 옥외 영업이 금지돼 있다. 이를 지키지 않아 민원이 발생하거나 도로교통법 등 타 법령을 위반한 경우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누적 횟수에 따라 시정명령→영업정지 7일→15일→ 30일→영업허가취소 등의 행정처분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포장마차에는 적용되지 않는 탓에 반쪽짜리 규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15년째 이곳에서 장사해온 포장마차 상인은 “우리 같은 경우 지자체에서 정해준 규칙(포장마차 1곳당 간이 테이블 4개까지 설치 가능)만 지키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오히려 식당 상인들이 수십 개씩 테이블을 인도에 펼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포장마차의 경우 구청에 신고만 한다면, 도로점용료 명목으로 매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규정 내에서 테이블을 설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식당 상인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이른바 ‘야장(야외에 테이블을 두고 장사하는 술집)’으로 유명해진 거리에서 손님이 몰리는 봄철에 식당에 국한된 단속에 대한 원성이 커지고 있다. 종로구가 단속 기간 이후 한쪽 차로를 ‘차 없는 도로’로 조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도 식당들에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한 호프집 사장은 “몇 년에 걸쳐서 이 거리를 살려놨는데 이런 식으로 단속을 하면 거리 상권 죽는 건 시간 문제고 다시 살리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세금 내고 장사하는 식당과 달리 포장마차는 세금도 안 내는데 단속 대상도 아니다”고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술집을 운영 중인 장모씨 또한 “포장마차는 그대로 두면서 자영업자들만 다 죽이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단속 두 달만 해도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서 SNS로 소문이 나 발길이 줄어들 텐데 말이 ‘상생 거리’지 상권을 죽이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의 안전 확보는 물론 상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먼저 최소한의 보행 안전을 확보하고 보행 장애물 문제 요인들을 제도권 내에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수 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도 “보행자 안전을 최소한으로 담보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면서 상인들도 공존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전문가, 지자체, 상인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