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호기자
"법 개정을 기다리면 언제 변화가 올지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 유통기업들은 알리바바·테무의 일방적인 공세를 받아야 하죠. 더군다나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유통법 때문에 오히려 전통시장이 중국 e커머스 기업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 이후 12년간 이어진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완화 조례 개정안이 지난 26일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지향 서울시의원은 최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에 나선 배경으로 국내 유통업계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C커머스(중국 e커머스)를 꼽았다.
이번 조례의 핵심은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기존 서울시 조례안은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를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범위에서 영업시간 제한'으로 수정한 것이다. 즉 영업시간 제한제도를 시행하되, 그 범위는 구청장의 재량에 맡긴 것이다. 또한 오프라인 영업 제한 시간과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월 2회의 의무휴업일 선정 기준에서 '공휴일' 부분을 삭제하고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했다.
그동안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문제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과 함께 유통업계가 꾸준히 제기해왔던 규제다. 현재 대형마트는 새벽배송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법제처가 영업 제한 시간 또는 의무휴업일 지정 날짜에는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배송기지로 활용한 온라인 영업행위도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된 조례는 유통법에서 규정한 규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온라인 배송에 한해 영업시간 제한 규정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원안이었지만, 유통법과 정면 배치될 수 있다는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의 의견에 따라 수정 가결된 것이다. 김 시의원은 "대형마트의 영업규제는 유통법상 특별자치시장과 시장·군수·구청장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며 "법의 범위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서울시장이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라고 설명했다.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규제를 줄일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규제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률안 개정이다. 하지만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유통법 개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과 유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양당은 총선 성적표를 받아 들고 당내 지도부 재구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지루한 원구성 협상이 이어질 것이다. 하루하루 격변하는 유통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법 개정을 기다리다 국내 유통기업과 전통시장이 모두 고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법 개정이 어렵다면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영업시간 제한의 경우 유통법의 기준은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범위에서 영업시간 제한'으로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광역단체의 조례는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더 촘촘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오히려 지자체가 더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이런 지자체 차원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다행히 의무휴업 평일 전환에 대해서는 서울시 일부 자치구와 대구시가 개정을 마쳤고, 부산시와 대전시 등이 추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도 이번 조례에서 볼 수 있듯 추가적인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 다른 지자체들도 이번 조례를 참고해 더 적극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