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나면 편의점에 SOS'…부활전략은 지역밀착 [편의점 왕국 日]

자연재해 잦은 日
지진·폭설시 편의점이 대응
편의점 3사 '지역밀착' 전략 세워
마을 방범까지 수행

일본 편의점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또 하나의 전략은 지역 밀착이다. 집에서 도보로 닿을 수 있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상권이라는 특성을 활용,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의 기능을 넘어 지역과 주민을 관리하는 종합 커뮤니티로 기능하고 있다.

자연재해 잦은 일본…재난 거점 된 편의점

지진, 폭설 등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편의점이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 현장 대응 선단에 선다. 특히 동일본대지진 이후로 편의점은 대지진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구호 물품 등을 제공하는 재난거점으로 거듭났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업계 단체인 일본프랜차이즈체인협회는 "지원물자를 실은 편의점 트럭은 긴급 차량과 마찬가지 취급을 해달라"는 편의점 점주들의 제안을 정부에 전달하고 피해지역 물자 전달에 나섰다.

동일본대지진의 교훈으로 일본 편의점은 지방자치단체와 '귀가 곤란자 지원 협정'을 맺은 곳이 많다. 제휴한 점포는 '재해 시 귀가 지원 스테이션'이라는 스티커를 붙여 대지진 등 재난 발생으로 대중교통이 중단돼 발이 묶인 사람들에게 식수, 화장실, 도로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를 한다.

'귀가 곤란자 지원 협정'을 맺은 편의점에 붙는 스티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출처=일본 방재정보 홈페이지)

세븐일레븐의 경우 재해 시 물자 지원 협정을 맺고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수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물이나 식량 지원을 즉각 지원한다. 세븐일레븐의 모회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운영하는 마트 이토요카도는 매장 내 재해 대책 물품을 진열한 코너를 따로 배치했다. 훼미리마트는 재해 발생 시 편의점 점주와 종업원의 역할이 정리된 긴급 행동 요령을 각 점포에 배포한다. 유사시 피난 장소나 긴급 연락처도 개별 점포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재해 발생 시 물품을 피해지역으로 긴급수송하는 로손의 물자수송차량.(사진출처=로손)

로손은 매장 내 조리공간을 마련한 점포를 9200곳까지 늘렸는데, 물류가 중단돼 재고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곳에서 자체 조리를 해 음식을 피해지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도시락 재료가 없을 때는 재해 시 메뉴로 세금 포함 100엔(890원)짜리 소금 주먹밥을 제공한다. 여기에 대규모 재해를 바탕으로 2015년 기상 정보, 도로, 철도 등을 지도에 일원화한 '재해 정보 지도 시스템'을 도입해 유사시에도 상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눈이 자주오는 지역인 아키타현의 세븐일레븐은 '도움 주차장'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폭설로 도로 제설이 늦어지면 방문 진료나 고령자 간병 서비스 제공자들이 주차 문제 등으로 불편을 겪게 되는데, 이때 방문자 자택 인근 세븐일레븐의 주차장을 임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판매 기능 넘어 지역·주민 관리하는 커뮤니티로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들은 모두 지역 밀착을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50주년을 기념해 '건강·지역·환경·인재'라는 4가지 비전을 공표했다. 각 지역의 원재료를 사용한 상품 개발에 힘써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고용 창출까지 꾀한다는 목표다. 또한 퀵커머스 '세븐 나우'를 살려 인구 감소 지역에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 점포를 도입해 편의를 도모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로손도 '지역 밀착의 진화'를 강조하며 전국 8곳에 '에리어 컴퍼니' 제도를 도입했다. 지역 한정 상품이나 지역 인기 식당 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라는 취지다. 지점에 영업부, 개발부, 상품부 등을 모두 두어 본사 결재 필요 없이 자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로손은 앞서 고령화가 많이 진행돼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 '로손 케어'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곳에서는 매장에 '케어 매니저'가 있어 제휴된 요양 서비스 상담을 가능하게 하고, 운동이나 영양 관련 이벤트를 실시해 고령자들에게 건강 정보를 제공한다.

훼미리마트가 오키나와 지역밀착 프로젝트 상품으로 선보인 상품들. 컵라면에 오키나와 문화유산 슈리성을 디자인하고, 오키나와에서 많이 먹는 식재료를 사용한 지역 한정 메뉴를 출시했다.(사진출처=훼미리마트)

훼미리마트는 오키나와를 꽉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키나와의 특색을 살린 지역 한정 메뉴를 만들고, 판매한 수익 일부를 오키나와의 문화유산 슈리성을 보전하는 데 쓰는 기금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특히 오키나와 나하시 현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현지 셰프들과 협업한 메뉴를 선보이면서 특색있는 상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지역 밀착으로 보란 듯이 성공한 편의점이 있다. 바로 홋카이도의 편의점 체인 '세이코 마트'다. 1971년 삿포로에서 개업한 지역 편의점 체인인 이곳은 2023년 기준 홋카이도에만 1090곳을 출점했다. 삿포로 주류도매상에서 출발한 이곳은 기존 유통망을 최대한 활용해 거래처 술집을 편의점으로 바꾸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여기에 주요 도심인 삿포로부터 총인구 1000명이 채 안 돼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지역이나 홋카이도의 낙도에도 출점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마트가 없는 곳에는 10㎏짜리 쌀 포대를 상품으로 들이는 등의 노력을 통해 지역 전체를 휘어잡는 상점으로 올라섰다. 사실상 세븐일레븐과 로손 등이 뚫지 못하는 '출점 저지선'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홋카이도 지역 편의점 체인 '세이코 마트'의 전경.(사진출처=세이코마트)

지역민의 편리한 생활을 도모하는 사례를 넘어 편의점은 최근 방범 거점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토의 로손, 미니스톱 편의점 점원들이 노인들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미연에 방지해 경찰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사이버 머니 카드를 다량으로 구입하는 노인을 본 점원이 사기를 직감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추가 피해를 막은 것이다.

이 같은 지역 밀착 서비스에 지난 1월 도쿄 경시청은 현지 편의점 점장들을 초빙해 지역 연결 강화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편의점을 현지 주민이 모이기 쉬운 장소로 만들고, 유사시에 서로 도울 수 있는 환경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카무라 다이스케 추오대 교수는 "편의점은 인근 사람을 잇는 기능을 한다. 재해나 방범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편집자주'편의점 왕국' 일본이 편의점 과잉경쟁에 들어간 한국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일본 편의점의 역사는 1970년대 시작해 벌써 반세기를 넘었다. 백화점은 없어도 편의점 없는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점포 수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시장이 포화상태를 맞으며 신규 출점수는 급감하기 시작했고, 높아진 임대료와 인건비, 내수시장 위축 등의 외부 요인이 작용하면서 업계의 황금기도 저물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느새 일본 편의점 수를 추월한 한국은 과잉경쟁으로 저물어가는 일본 시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일본의 편의점 역사와 위기 상황에 놓인 기업들의 전략들을 살펴보며 한국 편의점 업계의 생존 전략을 모색해본다.
글 싣는 순서①저무는 편의점 왕국 日...황금기는 끝났나②점포 포화·인력부족…편의점의 고민③식품업계 손잡고 해외 M&A 활발…편의점의 돌파구④재난거점·마을 특성 맞춰…부활전략은 지역밀착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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