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선진국 기후공시 국내 2만여개 기업에 영향'

미국, EU 등 기후 공시 강화추세, 한국은 대응 느려
한은 '국내외 기후리스크 공시 기준 도입 동향' 보고서

한국은행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기후 관련 공시를 강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우리 금융당국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서 관련 기준을 빠르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의 '국내외 기후리스크 공시 기준 도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상장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후 리스크 관련 정보를 공시하는 제도를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최근 확정했다.

한은 지속가능성장실은 올해 초 만들어진 이창용 한은 총재 직속 조직이다. 중앙은행 차원에서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등 지속가능성장 연구를 위해 신설됐다.

SEC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은 물론 기후 리스크 대응과 관련한 기업전략, 위험관리, 목표 등의 정보를 보고서로 공시해야 한다. 온실가스의 경우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배출기준 : 스코프 1)는 물론 사업을 위해 구입한 에너지로부터 간접 배출한 온실가스(스코프 2)도 보고하도록 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관련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EU는 2022년 11월에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관련 공시를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EU 기업들은 탄소배출량과 오염관리 목표, 물 소비 현황, 기후리스크 대응 전략 등 ESG 측면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EU의 경우 기업이 자신의 상품을 사용한 고객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도 보고(스코프3)하게 하는 등 미국보다 더 강한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선진국들의 정책에 따라 미국에 상장된 13개의 국내기업과 EU 공급망에 속한 국내 수출 대중소기업 1만9337개 등 총 1만9350개의 한국 기업의 기후변화 공시리스크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재윤 한은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의 기후리스크 공시규제 강화는 해당 국가에서 직접 사업을 영위하거나 상장한 국내 대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중소기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EU가 역내 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를 도입함에 따라 관련 공급망에 속한 국내 수출 기업들이 간접적으로 공시 의무를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EU나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2025년부터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기업들의 부담과 역량 미비로 인해 공시 도입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금융감독원도 2022년 12월에 기후리스크 관리지침을 마련해 국내 금융회사(은행, 보험사 등)가 기후리스크 관리 현황과 기후리스크의 잠재적 영향을 공시하도록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공시지표를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거래소는 ESG포털을 운영하고 있지만 공시된 정보가 기업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2023년 기준 162개 기업)에 의존하고 있어 정보량이 제약되고 객관성 검증도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과장은 "금융 당국은 국내기업이 글로벌 기후리스크 공시 규제 강화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글로벌 규제 수준에 부합하는 기후리스크 공시기준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도 기후리스크 공시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자체 기후공시 역량을 선제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출 대중소기업은 진출 지역의 공시규제 내용 및 도입 시기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규제 준수에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및 관련 데이터 확보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금융부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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