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올해 하반기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정년이'가 최근 '고증 논란'에 휩싸였다. 극의 시대상은 6·25 전쟁 직후 한국인데, '체크무늬 한복'을 착용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지적이다. 전쟁으로 생산 기반이 피폐해져 먹을 것 하나 부족했던 시대에 서양에서 들여온 원단으로 저고리를 해 입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였을까.
논란이 불거진 드라마 스틸 컷은 배우 김태리가 '체크무늬' 저고리를 입은 사진이다. 언뜻 보기엔 1950년대 의상이 아닌 현대적 의복으로 느껴질 정도다. 일각에서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리한 각색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의복은 사실 시대 고증을 훌륭히 반영한 것에 가깝다는 반박이 나왔다. 실제 1950년대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원단으로 옷을 만들거나, 혹은 체크무늬 원단으로 헤진 부분을 수선해 입었다는 것이다.
김태리의 엑스(X) 팬 계정인 한 누리꾼은 "1950년대에는 구호단체 원조물자로 체크 원단을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라며 "(1950년대는) 아크릴 같은 합성섬유가 이미 개발됐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한복을 양장같이 개량해 입기도 한 사진이 남아 있다"고 설명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운영하는 영문 국내 원조 역사 아카이브 'K-디벨로피디아'를 보면, 1950년대 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거의 모든 생산 기반을 잃었고, 당장 소비재를 만들어 민간 경제에 공급할 여력 자체가 없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소비 경제는 사실상 해외 원조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지원 금액은 약 23억달러(3조297억원).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기에 그리 많은 돈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금액은 당시 한국 정부 총수입의 절반 이상인 53%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해당 금액은 '돈'으로 한국에 들어온 게 아니다. 당장 생활에 긴급하게 필요한 음식과 섬유, 연료 등 소비재의 형태로 지원됐다. 이런 물품은 국제연합(UN) 회원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해당 소비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민간 경제에 직접 공급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전통 시장에서 가끔 보이는 옥수수빵은 원래 미국 원조 물품으로 들여온 저렴한 옥수숫가루를 반죽해 먹던 것에서 시작됐다. 화려한 체크무늬 원단으로 저고리를 짜 입은 이야기 뒤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즉, 정년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련된 체크무늬 저고리'는 과거 한국 생활상 고증을 훌륭하게 반영한 사례이자, 실물 경제가 사실상 붕괴해 해외 원조로만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궁핍한 시대의 또 다른 단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