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준기자
총선을 3개월 앞두고 1980~1990년대생 '젊은 피'가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태어난 21세기 정치인도 등장했다. 텃밭에 눌러앉은 현역 중진 의원들과 달리 험지 출마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여의도 정치판'의 세대교체를 외치고 있다. 기성세대가 사실상 독점해온 정치 구도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2030 정치인의 면면을 '지역구 도전자' 중심으로 살펴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1일 기준 22대 총선 예비후보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 20대 출마자는 4명이다.
먼저 서울에선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29)이 서울 서대문갑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그는 '박근혜 정부' 임기와 함께 서대문구에서 20대를 시작했다. 2015년 4월에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며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등 항의 집회를 이끌기도 했다. 고교 시절 '나의 비전 쓰기'라는 학교 프로그램에서 "나의 사명은 지치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가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을 만큼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품은 청년이다.
서대문갑은 영원한 라이벌로 꼽히는 '우상호-이성헌'이 사라지며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와 6번에 걸쳐 맞붙었던 국민의힘 소속 이성헌 전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손 수석대변인은 거대 양당이 독점해온 정치판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최근 아현역, 홍제역, 연희삼거리 일대에서 출근길 인사를 통해 주민과의 스킨십도 꾸준히 늘려 가고 있다고 한다.
손 수석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서대문구는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전입했거나, 1인 가구인 경우가 많다"며 "저와 닮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동네"라고 소개했다. 이어 "1987년 정치체제가 만들어진 뒤 정치권에 대한 변화 요구는 많았지만, 제대로 실행된 적은 없었다"며 "기후 위기, 출산율 저하 등 앞으로 닥쳐올 사회적 위기를 풀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들이 더불어 살고 서로 돕는, 다정한 동네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21세기 정치인'도 있다. 대구 중·남구에 출사표를 던진 강사빈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23)이다. 2001년에 태어난 그는 경북대 미술학과에 재학 중이며, 청년나우정책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2022년 보궐선거 당시 중·남구에 최연소로 출마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9월에는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으로 발탁됐고,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청년 출마자답게 '세대교체'를 외치는 그는 이름 있는 정치인을 후원회장으로 섭외하는 관행을 깼다. 인터넷 신문 '청년매일'을 운영하는 1999년생 허창영 대표를 중심으로 후원회를 꾸렸다. 특히 ▲동성로 대규모 주차공간 건설 ▲지방청년청 신설 ▲동성로 공동캠퍼스 타운(DCT) 등 지역 주민들이 공감할 만한 공약을 제시하며 민심에 스며들고 있다.
아직 예비후보자로 정식 등록하지 않았지만, 기대를 모으는 '20대 정치인'은 더 있다. 서울 송파을 출마를 선언한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27)이 대표적이다. 그는 '추적단 불꽃' 활동을 통해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태'의 전말을 처음으로 밝혀내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22년 3월 '민주당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여의도에 등판했다.
'현역'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송기호 민주당 송파을 지역위원장 등과 대결을 앞둔 그는 윤석열 정부의 실책과 민주당이 맞닥뜨린 여러 논란을 정면 비판하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성범죄 근절'과 '노동 분야' 공약을 중심으로 자기 색깔을 확실히 하는 모습이다. 공천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일단 당을 떠나지 않고 쇄신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청년비서관을 지낸 박성민 전 비서관(27)은 경기 용인정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역구 의원인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전 비서관은 용인에서 20년 넘게 거주했으며, 용인정 지역위 대학생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 타이틀을 딴 그가 총선에서 '새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아울러 김혜미 전 녹색당 부대표(29)가 서울 마포갑에 도전장을 낼 예정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시민 활동가 출신이다. 기후 위기와 여성·노동자·소수자·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계층을 위한 '복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30대 출마자'는 대체로 여권에 몰려 있다. 먼저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35)과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38)가 지난 9일 나란히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장 전 최고위원은 부산 수영, 손 대표는 경기 동두천·연천에 출사표를 던졌다. 모두 국민의힘 현역들이 버티고 있는 지역구란 점에서 주목된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출마 선언에서 자신을 '여의도 인싸(인사이더)'라고 소개하며 부산의 변화를 다짐했다. 19~20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등에 내리 패배했던 손수조 대표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선출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출마 명분을 다지고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36)도 칼을 갈고 있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 도봉갑 후보로 공천을 받았지만, 본선에서 인재근 민주당 후보에 밀려 낙선한 바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IT기업 레이터를 운영한 기업가 출신이기도 하다. 청년정당 '같이오름'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손자 김인규 전 대통령실 행정관(34)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부산 서·동구에 도전한다. 할아버지의 지역구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다.
'개혁 주자'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38)이 어느 지역에 도전장을 내밀지도 관심사다. '박근혜 키즈'로 여의도에 등장했던 그는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3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2위로 낙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노원병에 출마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국민의힘을 떠나 신당 창당 작업을 주도하는 만큼 '제3지대 빅텐트' 구성에 힘을 쏟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천하람·허은아·이기인 공동 창당준비위원장과 함께 찾은 개혁신당의 첫 번째 행선지 대구 지역에 '동반 출마'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출마 지역구를 특정하는 것에 말을 아끼고 있다.
여권에서 '청년 정치인'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한 천하람 개혁신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39)의 파급력도 관전 포인트다.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시절부터 꾸준한 행보를 이어온 전남 순천 갑에 그대로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 출신으로, 반(反) 보수 정서가 강한 호남에서 '맨땅에 헤딩'을 해온 천 위원장은 '지역주의 타파'를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SBS 라디오에서 "순천에 출마해 '호남 교두보'를 만드는 게 개혁신당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며 "합리적인 진보, 자유 보수적인 진보까지 포용할 수 있는 '중도 보수' 신당이 목표"라고 밝혔다.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31)은 성남 분당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류 의원은 판교 지역 게임회사에서 해고된 뒤 청년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한 직후부터 야탑동에 사무실을 내고 민심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지난 4년간 여성·청년·노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냈고, 대정부 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정책 대화를 주고받은 장면은 백미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최근 제3지대 신당파로 합류한 것은 변수다. 정의당을 떠나지 않고 '세번째권력 공동대표'라는 직함으로 외부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33) 또한 지역구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 격인 '더불어시민당' 소속 비례대표 후보 5번으로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세월호 참사'가 정치 입문의 계기였다. 용 상임대표는 개인의 선거 준비보다 진보 진영이 연대하는 '개혁연합신당'의 승리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기본소득당의 원내 의석이 자신의 자리 하나뿐인 만큼 비례대표 재출마 가능성도 있지만, 이 문제는 선거제 개편과도 맞닿아 있어 단정 짓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여전히 5060세대가 주류다.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예비후보자 통계를 보면 11일 기준 20대 도전자는 4명, 30대는 37명, 40대는 133명에 불과하다. 반면, 50대 출마자는 432명, 60대는 353명에 달한다. 70세 이상 고령 출마자도 38명이다. 비율로 보면 전체 예비후보자 997명 중 2030세대가 41명(4.1%), 5060 세대가 785명(78.7%)으로 뚜렷하게 대조된다. 혁신과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가 꾸준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요원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