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훔기자
한국에서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 발사체 기술력이 20년이나 뒤처져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누리호 개발에 투입된 예산의 80%가 민간업체에 쓰였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자체 기술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의미로, '한국판 스페이스X'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통신산업의 패러다임 전환도 기대된다. 저궤도 위성 인프라 구축 비용 감소가 불러올 위성 산업의 발전은 통신사들이 기존 유무선 통신 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내 우주 사업체와 통신 기업들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변화에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20년 업력의 스페이스X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으로 '수직계열화' 전략을 꼽는다. 수직계열화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필요한 일련의 공급사슬을 각 분야의 계열사로 구성한 것을 말한다. 스페이스X는 로켓과 우주정거장 개발로 공급망을 구축했고 통신 위성 사업을 더 해 독자적인 우주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국내에선 한화그룹이 스페이스X와 흡사한 수직계열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3월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핵심 우주산업 기술의 유기적인 결합을 위해 '스페이스허브'를 출범시켰다. 스페이스 허브는 각 계열사가 참여한 우주 사업 협의체다. 위성 제작과 발사 수송, 위성 서비스, 우주개발 및 탐사 등 밸류체인 완성을 목표로 한다.
스페이스허브에 속한 기업들은 저마다의 역할이 분명하다. 한화그룹의 방산 중간지주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 엔진을 담당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시스템과 쎄트렉아이는 위성체 제조와 지상체 제작 및 운용을 맡는다. 고체연료 부스터는 ㈜한화가, 발사대는 한화디펜스가 중점적으로 개발한다.
스페이스허브의 핵심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3차 발사 이후 오는 2027년까지 남은 3차례 누리호 제작과 발사를 총괄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앞서 누리호 심장인 75t급 액체 엔진 5기 등 모두 6기의 엔진을 직접 제작했다. 엔진 부품인 터보펌프, 밸브류 제작을 비롯해 엔진 전체를 조립했다. 75t 엔진은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개발했으며 지금까지 3차례 발사를 통해 성능을 검증한 첫 우주발사체 엔진이다. 기존 누리호 개발의 콘트롤타워였던 항공우주연구원은 공동 참여하되 발사 및 체계종합 기술을 이 회사에 이전키로 했다.
국내 발사거점도 확보한다. 한화그룹은 전남 순천과 고흥 등에 발사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500억원을 투자해 순천시에 2만3140㎡ 규모의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을 건립한다. 전남 고흥에 발사체 클러스터 부지가 조성되면 발사체 핵심 구성품 제조시설도 세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남은 3차례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실용위성의 궤도 진입기술 등 노하우를 축적해 나갈 것"이라면서 "향후 민간 인공위성, 우주선, 우주수송선 등 여러 상업용 우주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로 시선을 돌리면 이노스페이스가 가장 눈에 띈다. 2017년 창업한 이 회사는 한국 최초의 민간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이다. 고체 연료와 액체 산화제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엔진의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해 우주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무겁지만 모터펌프로 추력을 조절할 수 있고 구조가 단순해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노스페이스는 1kg당 2만8000달러(약 3700만원)면 150kg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사인 미국 민간 우주 기업 로켓랩의 발사 비용은 3만3000달러에서 3만8000달러 수준이다. 이노스페이스 관계자는 "로켓을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기술 개발도 이미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말 시험에 착수해 2025년 완성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렇게 기업들이 우주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의 미래먹거리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특히 기대되는 부분은 위성 통신 분야다. 지난해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전체 위성 산업에서 통신의 비중이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 스탠리는 글로벌 위성 산업에서 위성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15%에서 2040년 53%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전체 산업 규모는 5800억달러(7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위성 기반의 통신·인터넷망 서비스는 비용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기존 인터넷망의 경우 대부분 광섬유 케이블 기반 시설의 유선망으로 이뤄졌다. 유지 보수가 수시로 필요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 부담도 크다. 반면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 인터넷망의 경우, 발사 비용은 크지만 위성 자체가 망가지지 않는 한 통신망 자체를 보수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통신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도 장기적으로 위성 통신 시대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KT의 위성통신 자회사 KT SAT은 무궁화위성 7호 등 총 4기의 방송통신위성과 자체 개발한 위성·5G 데이터 통신 연동 기술인 '하이브리드 라우터'를 기반으로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을 진행 중이다.
LG유플러스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협력해 양자컴퓨터 D웨이브를 통한 저궤도위성 네트워크 최적화를 연구를 진행했다. SKT의 자회사 SK텔링크는 '인말새트' 등 해외 위성을 임대해 위성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저궤도 위성서비스가 기존 통신망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초고속 통신을 제공하는 등 활용 가치가 높다"며 “지금은 B2B(기업간 거래)위주로 위성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기술이 고도화되고 민간이 수많은 위성을 콘트롤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손쉽게 서비스를 제공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